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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아니!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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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탐색 아니! 우연

Exploration Nay! Serendipity

Photo by Elle Morre on Unsplash


내가 세고 있는 숫자에 관계없이 탐색의 영역을 확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나의 숫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 탐색이란, 인간들이 주변에 있는 다른 존재들을 감지하고 간간히 감각과 지식을 이용하여 추측과 상상이라는 장난감을 꺼내, 의식의 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쾌락의 일종이다. 검증할 필요도, 맞을 필요도 없는 그들의 세계이다.

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여인은 음악을 듣고 있지 않음에도 연신 다리를 들썩거리고, 힐을 신은 두 발을 춤추듯 흥겹게 휘저었다. 긴 다리와, 힐의 입술 위로 드러난 홀쭉하고 적당히 굴곡진 발등이 자랑스러운듯 했다.

 

다시 시선이 내 발끝을 향하는 좌표로 고정됐다. 그러나 시선의 흔적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어떤 당김의 에너지가 잡아 끄는 쪽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에너지와 시선,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매길 수 있는 여러가지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다른 아름다움은 발디딜 곳이 없었다. 시선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 아름다움을 포옹하기에는, 말도 행동도 생각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만 알면 되었다. 별안간 공기는 설레임이 되었고, 땅끝 구석에 쳐박혀 있던 나만의 무한한 창조의 샘이 솟아났다.

 

눈부신 얼굴이 마스크 뒤에서 하얗게 숨쉬고 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가녀린 몸매를 감싸 안은 검정색 티셔츠와, 긴 린넨천이 마치 거대한 검은 나비의 날개 같은 검정색 치마, 그리고 그 밑둥 아래로 빼꼼이 보이는, 말끔하게 단장하고 나들이 나온 한 쌍의 하얀 운동화는 그저 아름다움과 창조의 은밀한 곳을 가리는 오른손 일뿐이었다.

 

가냘퍼서 초라해 보이는 나 같은 이들을 피해 다니던, 피곤한 쌍꺼풀에 갇힌 나의 두 눈에, 수 많은 부사와 형용사를 남발하여 뻔한 고상함을 버릴지라도, 나는 땅끝 위로 떠오르는 수 없이 다양하고 들뜬 그 형언하기 까다로운 감각들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좌석을 예매하려고 대기중 인거냐고 물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대화의 머리였겠지만, 오늘 처음 조우한 우연의 세계 그 어디에도 주저함은 없었다. 그 우유부단한 것은, 흔히 루두스가 보이기 시작하는 즈음에 불쑥 튀어 나와, 에로스에게로 가는 길의 운명을 결정짓곤 한다.

 

대기자 527명?

손바닥 보다 작은 핸드폰 위에서, 가까스로 나에게 제 존재를 인식시켜 주는 릴리풋들 중 일부가 말해 주었다.
그러자 짙고 넓은 쌍꺼풀을 두른 두 눈이, 얇은 여러 겹의 쌍꺼풀을 가진 두 눈에게 말했다.

 

추석 귀향 기차요.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궁금한 대신, 시각적 갸날픔들을 단박에 몰살시키고 튀어 나온 음성으로, 존재 자체로부터의 놀라움 못지 않은,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

 

꼭 성공하길 바래요.

그리고.
의식의 시선은, 영혼의 옷은 벗어둔 채, 물질로 가득찬 허상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전진하는, 마이크, 카메라, 스피커가 내장된 모니터들의 뒷면에 닿아 있었지만, 무의식의 그것은 절대적 아름다움의 주위를 하염없이 맴돌았다. 언제까지나.


설령 의식이 원하지 않더라도, 휘도는 무의식의 시선은 그리하고 있을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니 시공간이 바뀌면, 미칠듯 빠져들었던 배우들과 기막힌 이야기들도, 한때 타올랐다가 꺼져버린 기억이 남긴 재에 불과할 것을, 그런데도, 그리고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겹도록 되돌이를 했으면서도, 벗어날 음표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온 우주에 유일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 때에 또 다시 조금씩 산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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