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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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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옹이
냐옹이 / 멍멍이 / 돌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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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우리에게 광명이자 왜곡에 빠지고 눈을 멀게하는 근원이다. 왜냐고는 묻지 말아주길 바란다. 설명하려면 너무 복잡해서 거품을 물고 침을 튀겨야 만 한다. 그래도 원한다면 알콜로 소독된 입에서 튀기는 침이 그나마 안전할 것이므로 술 한 잔 마시면서 해야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1)를 통해 은유를 알게 됐고,

이후 문학, 역사, 철학의 세계로 입문했다. 이과를 선택한 후, 38년 동안 그 뒷감당을 해야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추측은 하지 않는다. 현재의 내 모습이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운이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다. 바라던 것들의 대부분을 가질 수 있었다. 가지지 못한 것들은 대부분 절실하게 원하지 않았던 것들이었을뿐이다.

아니, 릴케 스토커도 그렇고 프로이트 性人도 그렇고 꼭 저렇게 쏘아보듯 해야 되는것인지. 밑에 있는 카뮈 지존과 칼 막썰어 아저씨는 웃고 온화한데 위의 두 분은 왜 저럼? 기분이 안 좋을 때 사진을 찍은듯. 


프로이트(2)를 통해 관념을-사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이론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유물론의 사조에서 나온 성과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념을 일깨워 준 이유는 프로이트가 인간의 내면, 자아, 초자아, 에고, 이드, 의식, 무의식 등에 감춰진 비밀을 들춰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영역이 관념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수(3)를 통해 종교적·사회적 정의 (正義), 고결함과 운명론을,

이 두 사람 얼마나 보기 좋은가. "햇빛  쏟는 거리에선 그대 그대. 고독을 느껴 보았나 그대 그대. 우리는 너나 없는 [이방인] 왜 서로를 사랑하지 않나. 햇빛 쏟는 하늘 보며 웃자 웃자. 외로움 떨쳐 버리고 웃자 웃자." 이것이 바로 심수봉 님의 [젊은 태양] 정신. 


카뮈(4)를 통해 아나키즘(5)을 알게 됐고,

마르크스(6)를 통해 유물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제반 이데올로기의 허명, 허구, 허상, 허영, 허무, 허접함을,

니체의 저 "토리노에서의 말 포옹 사건"의 전말을 보면 한 없이 짠한 마음이 용솟음쳤다. 그랬는데 어느 날 큰 맘 먹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난 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읽는 도중에) 그 마음이 훅 갔다. 그 책을 한 4분의 1쯤 읽는 동안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웠다. 어찌저찌 읽기는 해야겠는데 선뜻 손이 움직이질 않는다. 매우 무서운 양반이다.


니체(7)를 통해 고난과 운명을 극복할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나은 나 자신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생철학 관점에서의 대표적인 니체의 사상이다. 영원회귀설, 말인, 초인, 낙타, 사자, 아이-Kid 개념은 나를 전율케 했었다.)을 갖고 살게 되었다.
이는 나와 이 세상 속에는 뭔가가 있다는 자각이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인식론적 형성 과정을 축약하고 있다. 아직 진행 중이다.

짧고 희미한 행복들의 간헐적인 출현에 촛점을 맞추기 보다는, 삶이 고통의 집합체임을 받아들이고 난 후, 삶에 대한 자세가 바뀌었다. -데미앙-


취직하기 전까지는 시도 쓰고 했는데, 직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음주가무, 주지육림 및 과도한 업무의 세계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삶과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시달리다가, 결의에 찼던 젊은 날의 늠름함은 세월 속으로 사라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결의를 했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이루기 쉽지 않은 업적을, 성취를 이루겠다는 결의였을 것이다. 누구나 한 두 번쯤은 꿈꿔보는 우리 평범한 인생 속에서의 목표들.

어느 날 문득, SNS의 잔혹함과 공허함을 감지 (또는 탐지)하고 나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감지나 탐지는 어떤 침입을 인지함을 말한다. 그리고 동영상에 감춰진 중독성과 우민화를 피해 가급적 멀리 한다. 우리는 상처 받은 자아와 영혼과 마음을 달래고 싶어서, 위로 받고 쌓인 감정을 손쉽게 해소하고 싶어한다. 시간이 많지 않을뿐 아니라, 강한 자극과 상심으로 너덜너덜 해진 감정을 치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널려 있는 동영상들을 접하면서 순간적인 위안을 찾는다.

대신 문자와 대화를 통한 의사소통을 선호하지만 축약된 단어나 톡의 형식은 지양한다.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사고의 흔적들을 남겨, 되돌아보고 되새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면 매일 어제 보다 더 나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태춘, 박은옥(8)노래들을 좋아했다. 기타와 피아노를 조금 칠 줄 아는 덕에, 연주하며 노래 부르기를 즐겨했다. 한 때 그룹사운드를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못했고, 연극 배우가 되볼까 했다가 못했다. 안한 게 아니라 못했다. 어떤 의지가 있어서 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그냥 노는 걸 좋아해서 그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 ‘하기 싫은 일’은 언제든지 그만두더라도 나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들에게도 제시할 명분이 충분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은 늘 ‘더 잘 해야한다’는 압력의 증가와 ‘싫증’이라는 자가당착으로 그에 대한 의지를 지속하기가 꽤나 어렵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 같다.

미래

지금은 네 개의 꿈(9)을 이루기 위한 길 위를 걷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꿈을 갖는 다는 것이 가당키나한 세상인가(11). 어느 새 우리들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꿈이나 희망 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위해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습성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지금 처럼 가슴 없는 향락인과 영혼 없는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는 것이 의미 있고 후회 없는 삶일지 고민하고 있다. 그걸 알기에 후배들에게 해줄 이야기도 없고 그럴 용기도 나지 않는다.
지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 왜냐하면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연대를 기대하기란, 지상 위의 낙원을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Choices - Translated by Dem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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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e to know metaphore over Rilke(1), and since that, entered into literature, history and philosophy. After choosing natural science side, instead of literal arts, had to pay for the choice during 38 year long period but don’t guess the way didn’t go thru could be better. Believe current myself is the best outcome.

Learned Idealism from Freud(2)-In fact, this sounds paradoxical because Freud’s theories were prosperous product of Materialism that swept whole Europe in that era. Nevertheless, thought Freud revealed the secret in human’s inner side of mind and the territory of the theories was in idealism-,
learned religious and social righteousness, and Fatalism from Jesus(3),
came to know Anarchism(5) from Camus(4),
Materialism, Communism and Capitalism, and figment of general ideologies from Marx(6),
able to live with a hope for me to build up a way better myself every day and to get over sufferings and the fate by Nietzsche(7).

Above sentences summarize the course of epistemological forming which has been started at the time of self-wareness of ego identity until now. More will come.

The attitude toward life has been changed since embraced the fact that life was a body contained accumulated pains rather than focussing on occasional emerges of short and vague happiness.

Used to write poems before the first employment, but was quickly sucked into the world of painting the town red, orgy and excessive works from there. The purposeful gallantness of young era vanished in the ceasless struggle against one’s life. Not able to recall what determinations were but those could be some longings for achievements and accomplishments which were not pushovers. Those objectives of ordinary life which anyone can dream of.

One day suddenly, sensed (or detected) brutality and vanity of SNS then have not been using anymore. Sensing or detecting means perception of intrusion. Try hard to avoid watching videos that conceal addiction and obscurantism.

Instead, prefer communication with characters and conversations without the form of abbreviated words and text messages. Want to live look back and recall the traces of thoughts and to organize thoughts by writing. Then will be available to see a better myself every day.

Liked songs of TC Jung and EO Park(8). I enjoyed sing along with playing guitar or piano since knew a bit of playing thise instruments. Wanted be a gang of a rock band and a theater actor but didn't go through. Wasn't a ‘ Didn't’ but a ‘Couldn't’. Wasn't a serious longing for but a simple wanting those because of loving of playing.

-Keep upd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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