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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졸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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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왜 졸았지?

이 녀석들은 그 유명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소위 "일꾼"들이다. "일꾼"이란 그냥 주구장창 자원을 캐고 필요한 구조물들을 만드는 노가다를 하면서 다른 케임 케릭터들을 만들고 전투 기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역활을 수행한다. 왼쪽부터 프로토스 종족의 프로브, 테란 종족의 SCV, 저그 종족의 드론이다. [이미지 소스] https://bnetcmsus-a.akamaihd.net/cms/page_media/U9IT8WC74J461539711890337.gif

 

지하철안에서 그야말로 심각하게 조는 여성들을 본 게 이번이 세 번째였다. 물론 남성들도 졸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여성들이 더 많았다. 그것도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히며 조는 모습은 참 신기했다. 한 번은 내 옆에 앉은 여성이 아예 내 왼쪽 어깨에 기대고 잠을 잤다. 그러다 가끔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쓰다듬다가 또 다시 메트릭스 세상을 빠져나가곤 했다. 왼쪽 어깨나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게 또 내릴 역이 되면 영혼이 마실 다니다가 칼 같이 귀가하며 급정신회복하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내린다. 우와~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보였다. 프로졸으머?

 

졸거나, 자거나 아니면 핸드폰 보거나, 또는 핸드폰 보면서 졸거나, 보던 핸드폰을 들고 자거나 그냥 깨어 있는 사람들. 그냥 깨어 있으면서 핸드폰을 보지 않으면 결국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힐끔거리거나 가끔씩 마주친 시선이 어색해서 딴청을 부리기도 했다.

 

앗! 오늘은 나도 앉아서 졸았다. 왜 졸았지? 어제 잠을 늦게 자서 그랬을까. 아니면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하 구내식당에서 이미 저녁을 먹었고, 대화 행이 아닌 구파발 행이라 승객이 적은 지하철의 맨 마지막 칸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바로크풍 기타 연주를 들으며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읽고 있었으니 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나?

 

한동안 이방인 처럼, 낯설음에 여기저기서 뒤척거리던, 임시 거처 같은 느낌의 휑하니 넓은 집 속의, 새로 지은 다가구 주택들이 너무 말끔하고 세련되어 보여 친해지기 어려운 골목길 속의, 와이파이가 된다고 신기해 했던 그리고 이른 아침 먼 길을 출근해야 하는 고단한 SCV들의 옆자리에 어색하게 앉은 또 고단한 프로브들이 가득한 그 광역버스 속의, 오늘 처럼 한가한 지하철이거나 아니면 당산역에서 앞 사람들을 구겨 넣으면서 타야되는 9호선 급행 처럼 빡빡한 지하철 속의, 운동삼아 힘차게 두 계단을 오르는 내 발걸음 가득한 판교역 4번 출구 계단실 속의, 사무실 주변 빌딩 사이 소박한 위로를 힘겹게 전하는 나무들 아래에서 쌓아 뒀던 한숨들 담배 연기에 섞어 토해내는 드론들 속의,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들려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하는 어떤 까페 속의, 저 마다의 업무로 오늘도 노고가 많은 SCV, 프로브, 드론들이 한가득 앉아 무심한 모니터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눈치 전쟁 처절한 사무실 속의, 그리고 또 이러한 공간들이 나를 지나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 1차원 속의 . 나는 조금씩 또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것들은 늘 이토록이나 불편하게 하고 또 흥분시킨다.

 

반복될수록 불편함과 흥분은 사이좋게 함께 사라지고, 익숙함과 무료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