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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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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어느 아침에

이층에 사람들 많음.

 

고개를 90도로 꺾은 채 - 오른쪽에 나이든 남자가 앉아서 졸고 있었기에 왼쪽으로 꺾었을 것이다.- 눈을 삼분의 일쯤 뜨고 자는 여자가 이층 버스의 이층 앞쪽 유리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보기만 해도 내 목이 다 뻐근 해졌다. 사람의 머리가 상당히 무겁다는데 혹시 머리가 복도 쪽으로 뚝 떨어지지는 않는지 자꾸만 눈이 갔다. 미모로 눈길을 끌기는 어려워 보이는 분이었다. 이 놈의 쓸데 없는 공감 능력.

 

내 바로 뒤에 앉은 찌질해 보이는 남자- 차창을 통해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곁눈질로 확인했다. -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연신 목을 큼큼거리며 목 안에 있는 목젖 주변을 청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집에서는 뭐하고 고요한 버스 안에서 그리 열심이었나.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거기가 자신이 가고자 했던 정거장 인줄도 모른 채, 고개를 하염없이 숙이고 있다가 막판에, 정신차린 좀비 처럼 벌떡 일어나서 가까스로 달려 나갔다.

 

잠시 후, 뒤쪽 어디에선가 신원 미상의 찌질할게 뻔한 어떤 남자는, 타고 있는 승객들은 물론 버스 조차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하늘로 솟을만큼 빵 터지듯 큰 소리로 기침 한 방을 날렸다.

 

그리고 나서 언제 또 그 폭발력 강한 기침이 터져 나올까 마음의 시선을 뒷쪽에 고정 시키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지만 결국 더 이상은 없었다.

 

한 시간 여의 운행 시간 동안에 딱 한 방 굵고 짧게. 그 기침의 원인이 무엇일까 정말 궁금했다. 왠만해서는 그 정도의 큰 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데, 기침의 고수였을까. 분명 재채기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는 무척이나 고요한 버스 안에서 나는 뭔가 어수선함 속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의도치 않게 보게 된 이메일 하나 때문이었을까. 내가 원하던 답이 씌여 있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신경을 쓸 만큼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아무리 사소한 바램이라도 어긋나면 대수롭지 않게 털어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의 성질머리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

 

원숙함과 쇠락함 사이에서 때때로 갈팡질팡 하는 내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겸연쩍기도 하지만, 이 마저 아이 같은 존재로 가는 과정이라 여겼더니 그 어느 아침은 다시금 발랄하게 다가왔다.

 

태풍이, 발끝의 통풍이 사라지듯 스쳐 지나가고 난 그 어느 아침의 하늘이 구름을 털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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