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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 장 그르니에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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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카뮈를 추억하며 - 장 그르니에 (진행중)

이미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책을 틈틈이 읽는다. 굳이 연속해서 읽을 필요가 없다. 카뮈(4)와 그 스승이었던 저자의 통찰력과 고귀한 행적들을 듣노라면 지성인의 발자취는 이렇게 남겨지고 그리고 또 이렇게 전해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 과정에서 저자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거나, 독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명작들이 그렇지만, 읽다가 떠오르는 지성의 해는 내 영혼의 빛이 되고, 쏟아져 내리는 감성의 비는 내 영혼의 생명수가 된다.

 

읽으면서 수확하는, 새기고 싶은 그들의 전언들을 완독 할 때까지 기록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고 여기지 않으면서도, 그리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깊이 자각하고 있는 이를 설득할 수 없는데도 어떤 미덕을 강권하는 경향이 있다.
너무나도 동감한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다.

 

위대함에 대한 욕망, 고귀함에 대한 동경은 그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을 선택하는 데에서도 드러나곤 했다. 그가 천성적으로 조심성 많은 사람이었다고 해서 그에게 온정의 천품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조심성은 물론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취지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진부한 것과 비열한 것에 대한 소박한 방어의 태도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나아가 그의 평가와 우정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위대함에 대한 욕망과 고귀함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흔히 서서 기다리는 마음속의 버스 정거장이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들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버스를 타지 못하고 되돌아가기 일쑤인 그런 정거장.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치관의 변질 없이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만 알베르 카뮈와 다른 이의 차이를 축소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정의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때때로 서술할 수 없는 것, 재현할 수 없는 것을 묘사하는 일이므로 글을 쓰려는 사람으로서는 반드시 정의해야 할 그 무엇이 이 차이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성의 축소 불가능한 부분이다.
......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강박 관념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곧 개성의 다름이다. 글을 통해 그 무엇이든 정의하고, 남기고 싶어 한다. 특히나 "서술할 수 없는 것과 재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묘사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 멈출 수 없는 호흡이다.

 

220923

이미 완독을 했지만 바쁜 일상으로 기록을 이어갈 수가 없다. 읽으며 메모해 둔 부분들을 하나씩 올려볼 작정이다.

 

 

221003

루이 기유의 [친구들]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그는 왜 자신이 이런 종류의 책에 감동받게 되었는지를 밝혔다. 가난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이 작품의 자양분 구실을 하며,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감추고 잊어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는 것에서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고리키 자신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한 것에 결코 눈을 돌려 버리지 않는 것에, 마치 아름다움이 상처를 통해서만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불행을 아름다움으로 변모시키는 것에 고리키의 천재성이 있지 않았을까?

카뮈는 청각장애가 있는 홀어머니 그리고 외할머니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축구를 좋아했지만 신발을 자주 살 수 있을만한 여유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골키퍼를 자원했다고 했다. 축구하느라 신발이 해지거나 구멍이라도 나면 외할머니의 거센 책망이 뒤따랐다. 청각 장애로 말이 없는 어머니, 가난에 찌들어 불만이 가득한 할머니 대신, 어린 카뮈는 늘 책과 그리고 자연과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나는 어릴적에 겪은 다소 일반적이지 않은 고통에 대한 기억이 있기에, 추하고 불행한 것들을 어떻게든 극복하여,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토록 내가 매달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같은 시공간 속에서,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고리키에 대한 부분을 나는 아래와 같이 고쳐보고 싶었다.
고리키가, 자신을 그토록이나 고통스럽게 만든 것들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 마치 아름다움이 상처를 통해서만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불행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모습에 고리키의 천재성이 있지 않았을까?

번역을 해봐서 그 고충을 안다. 직역이 나은지, 의역이 나은지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고 시간에 쫓기고 닳아버린 의지력을 만지작 거리다 보면 끝내야 될 시간 위에 서있는 자신을 보며 허탈해한다. 그리고는 곧장 나 이외 모든 사람들의 이해와 나 자신의 합리화에게로 눈을 돌린다. 때로는 번역작의 대상이 되는 원서들을 보면서, 자신이 직접 번역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나 언감생심, 감히 나서지 못한다.

 

221010

죽기 몇 달 전에 그는 니체의 서간집을 읽었다. 그는 니체가 자신이 마치 선한 신인 양 이야기했으나 여전히 가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선한 신이 아니었다.
이점과 관련하여 나는 아주 오래전에 [니체의 신성]이라는 제목의 책이 익명으로 출판됐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준 기억이 났다. 이 책은 니체의 신성을 열렬하게 확언하는 것이었다. 니체를 옹호하는 차원을 넘어 니체를 거의 신앙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이 책을 나는 아주 좋아했다. 에즈 - 프랑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관광의 명소. - 에서의 니체! 그때, 그리고 나중에 토리노에서 그가 받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계시!
카뮈는 이 신앙 행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내기로 여기면서도, 여전히 미심쩍어했다. 그러나 니체는 예컨대 디오니소스, 그리스도에 대한 무의식적인 모방 의지를 늘 지니고 있었으므로, 카뮈는 이 착각을 이해하고는 용서했다. 카뮈에 의하면 니체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기진맥진해져 그들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러나 카뮈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기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장 크게 탄복한 문학은, 문학이 인간성과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그의 생각을 고려할 때, 글쓰기와 삶 사이의 이러한 결합을 구현한 러시아 문학이었다. 그는 톨스토이를 가장 위대한 문인으로 존경했으며, (루르마랭의 방 안에는 톨스토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톨스토이의 것이라면 설교까지도 용납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에게도 홀렸으며, 더 나아가 모든 러시아 작가에게 그러했다.
니체의 사상과 생각은 가끔씩 나를 전율케 한다.
카뮈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 이는 그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다. 그렇기에 신성에 대항하는 실존주의적 갑옷을 두르고 자신들이 천국과 낙원을 수여하겠노라며 민중을 호도하던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간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모든 부조리에 반항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 카뮈도 톨스토이(12)와 도스토옙스키에게만큼은 심오한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 두 거장이 그 얼마나 기독교적인 인물들이었나. 그들의 대표작들은 이야기와 인물들로 가득한 설교집이자 도덕 교과서와 다름없다. 그런데도 카뮈가 그들을 존경했던 것은, 다양한 '인간'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여러가지 모습들을 꿰뚫고, 그것들을 글로 표현해낼 수 있었던 '인간'에 대한 심오한 관심, 그리고 기독교적 사상을 통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시종일관 주장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예수(03)의 첫 기적은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었다. 이는 다소 디오니소스적인 이야기다. 성서에는 거룩하고 심오한 아폴론적 색채만이 가득할 것 같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특히 예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 속에는 늘 함께  먹고 마시며, 동고동락하며 때로는 치유와 위로가 때로는 책망과 훈계가 적절히 나열되어 있다. 나는 가끔씩 이러한 관점에서 성서를 읽으면서, 그 오묘하고 균형 잡힌 놀라운 복음들의 참 의미를 발견하곤 즐거워했다. 


세상은 한 가지의 색으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다채롭게 표현되고 그에 따른 완성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221020

 

그가 모든 것을 극복하도록 만드는 것은 태양이었고 바다였다. 그는 *오랑 근처의 황량하고 터무니없이 넓은 해변에서 천막을 치고 여러 날을 보냈다. 그는 이 동물적인 삶에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해변의 아침은 세계의 첫날인 듯했다."
낭만파의 상투어로 통할지도 모르는 이 말이 그에게는 남다른 충만한 의미를 띠었다.
새벽의 시인이 있다면, 그는 카뮈다. 첫날······ 그리고 또한 최초의 인간 (아직 간행되지 않은 미완성 책의 제목). 시간상 최초의 것은 가장 탁월한 것이기도 하다. 무엇 때문인가? 모든 시초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답기 때문이고, (그렇다고는 해도, 작품이 당연히 삶과 혼동되는 것은 아니므로, 작품은 완성되었을 때에만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능한 것이 아직은 숙명적인 것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그런데 이토록 많은 이유를 대야 할까?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본성과 일치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할 수 있다.

* 오랑은 알제리의 수도인 알제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이며, [페스트]의 배경이 되었던 도시이다.

태양과 바다 그리고 압셍트의 향기. "동물적인 삶은" 고독하다. 고독의 시간들을 거친 인간이 타인들과의 조우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은 타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남다른 기쁨과 활력을 느낀다.
아무도 없는 드넓은 해변에서 느끼며 즐기는 그 고독이란, 마치 이 세상에, 이전까지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가 마침내 나로부터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그 "최초의 순간" 처럼 느끼는 고독이다. 아직은 "숙명"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는, 단지 가능성만이 존재하는 그 시작의 순간이기에, 새롭게 만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그 벅찬 마음은,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나의 본성은 무엇일까.
나의 본성은 내가 살고 있는 삶이나 내가 즐기는 것들과 일치하고 있을까.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다고 보고, 운명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르니에의 견해는 실존주의적인 관점과는 일치하지 않는듯 하다. 세상에 던져진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은 출생이었다. 그리고 스토르게적 사랑과 필리아적인 사랑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무게가 크지는 않지만, 수 없이 많은 작은 선택들을 하면서 자란다. 마침내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선택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얼마든지 본성과 일치하는 선택들을 영위하면서, "주어진 것"이 아닌 "선택한 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보는 관점은, 나 자신 보다는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우선 시 하면서 그에 따라 수반되는 욕망과 타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방면에 걸친 고뇌와 결핍을 극복하고, 선택한 것들과 본성의 조화를 통해, 위대한 업적을 일구어낸 불굴의 예술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221023

 

어느 날은 브라질 대학생들로부터 왜 '철학적인' 희곡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알다시피 그의 대답은 재치 있는 *경구였다. 
"사람은 죽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 두 문장 속에 아주 개괄적인 철학이 들어 있습니다."

*경구: 아포리즘 (Aphorism), 명언, 금언 등의 의미

'행복하지 않다는 것'과 '불행하다는 것'은 다르다. '불행'이라는 개념 속에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고 '행복'이라는 개념 속에도 마찬가지로 '불행하지 않은 것' 보다 무척이나 많은 상황들이 포함될 수 있다. 심지어는 같은 상황일지라도 배경과 당사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과연 카뮈가 이것을 몰랐을까?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 먹은만큼 행복하고, 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며, 없는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카뮈의 말대로, '죽음'과 '행복'이라는 두 단어에는 매우 개괄적인 철학이 들어 있다. 행복을 추구하며 살다가 결국 죽게 되는 인간에게 있어서 이 두 가지 개념은 삶의 전체를 관통한다. 그의 삶에 대한 명료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두 단어이다.

221030

 

브르타뉴 지방이 전적으로 알베르 카뮈의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숭배하는 일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것을 숭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한 편집증이다. 묘지를 자주 방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비참한 모습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인간이 그토록 많은 불행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으므로 주제넘게 불행을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써 인간에게 고통을 추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행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행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불행을 역설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소용도 없고 유해한 짓이었다.
......그는 내게 (정확하게 이런 용어를 쓴 것은 아니지만)
"저의 펜을 바다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탕달의 문체를 간직하면서도 샤토브리앙 문체의 어떤 면모를 *체득하고 싶어 했다. 그는 성공했다. [**간부 (姦婦)]의 끝부분이 그 증거다. 경계하기는 했지만, 그는 지중해 사람으로서 ***'조음법'에 ****'벨 칸토' 창법에 민감했기 때문이다.

* 그는 자신의 '음역'을 넓히고 싶어했다. [적지와 왕국]은 다양한 발상을 담은 단편집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체를 연습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파스칼과 샤토브리앙을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여겼는데, 이 두 작가는 음역으로 비유되는 문체의 양 극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 [적지와 왕국]이라는 연작 단편집 속에 있는 작품 중 하나. 〈간부〉, 〈배교자〉, <말 없는 사람들>, 〈손님〉, 〈요나〉, 〈자라나는 돌〉 등 모두 여섯 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 원래는 음악 용어로 악기 (목소리)의 음정을 고르는 방식이다.

**** 미성을 내는데 치중하는 발성법.

'죽음'과 '행복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유교만큼 죽은 자에 대한 숭배를 철저히 하는 종교나 사상이 또 있을까? 공자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왜 그리도 공자가 제사에 집착했는지 일면 이해가 간다. 70세였던 공자의 부친 공흘 (숙량흘)과 16세의 어머니 안징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징재는 무당으로 알려져 있다. 세 살때 부친을 여의고 외가로 가서, 어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공자는, 허구헌날 제사놀이를 하며 자랐다고 알려져 있다.

카뮈는 '인간은 행복하지 않다'라고 표현 했는데, 그르니에의 표현인지, '불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카뮈는 '행복하지 않은 것을 역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의 많은 작품들은 '행복하지 않은 모습들'을 담고 있다. '죽음'과 '행복하지 않음'에 너무 집중해도 문제겠지만, 이 둘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겪고 있는 이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들이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이겨내야 한다.'라고 떠들어야 한다. 따라서 카뮈의 말처럼, 우리가 이미 뻔히 알고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언급 보다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교묘하게 형체를 변형하여 사람들의 행복을 앗아가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폭로'가 필요하다. 이것이야 말로 '블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닐까. 지성인들의 사명이다.

그러한 지성인으로서의 카뮈의 사상들이 그 자신을 얼마나 피로하고 지치게 했을까. 그저 수려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글들을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도 그의 영혼 속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최소한 그는 그의 본성과 작가라는 직업이 동일선 상에 있었다고 보기에, 나는 감히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221118

 

"창문을 닫아 주세요, 날씨가 아주 좋아요······." *플로베르의 친구인 르 **푸아트뱅이 세상을 뜨며 한 말이다. 이 말은 알베르 카뮈의 [수첩]에 인용되어 있다.
자연이 제공하는 취기에 취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서의 도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의 무익하다.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 다른 사물의 일부로 바뀌는 그러한 순간들을 기대하거나 추억하면서 살아간다.

* 구스타브 플로베르. 프랑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작가로서 대표작인 [마담 보바리]를 저술했다. [마담 보바리]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 엠마가 너무나도 불쌍하다. 허영과 욕망이 깃든 꿈을 품었다는 죄로 자신의 모든 것 - 마음과 사랑과 물질적인 것까지 -을 빼앗긴 채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했던 여인. 왜 남성들은 그보다 더한 망나니 짓을 해도 건재한데, 여성에게만큼은 그런 가혹한 운명이 형벌처럼 주어지는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함께 바람 피운 유부녀의 말로는 이토록이나 비참하다고 나불대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 알프레드 르 푸아트뱅. 플로베르와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염세주의적 견해를 가진 시인, 철학자이자 변호사였다.

죽기에는 너무나 날씨가 좋다. 떠나는 마당에 그 꼴을 보기가 너무 아쉬워. 
참석하고 싶지 않았던 모임에서, 어느 순간 자신 만의 즐거움을 발견 했지만, 필연적으로 지켜야 될 다른 약속 때문에,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그 마음 같은?
비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살던 한 염세주의 경향의 지식인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마지막으로 남길만한 말이다.

나는 성경 속에서 가장 염세적인 귀절을 꼽는다면, 신앙심이 가장 탁월한 사람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욥의 탄식을 꼽는다.
“어찌하여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습니까? 차라리 그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고 숨져 태어나지도 않았던 듯이 모태에서 무덤으로 바로 갔다면 좋았을 것을.”(‘욥기, 10:18-19)
이 얼마나 섬뜩한 탄식인가. 이 보다 더 염세적인 인생관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염세적 가치관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오히려 행복한 삶에 대한 처절한 염원이 담긴 사상이라고 믿는다. 그 염원이 너무도 크기에 그렇지 못한 세상과 현실에 대한 탄식은 그에 비례한 크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카뮈는 친구가 남긴 마지막 유언을, '자연 속에서의 도취'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인다. 날씨가 너무나도 좋은 자연에 도취 되어, 죽음을 앞두고도 얽메이지 않는 모습을 마음 속에 담았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추악한 인간'이 배제된, '자연'에 대한 심취 속에서 위안을 얻고, 행복한 세상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일까.

221204

 

 

유일한 행복은 지상에서의 행복이며, 유일한 삶은 속세에서의 삶이다. 알베르 카뮈를 생각할 때는 이 출발점을 꼭 상기하자. 이것을 도달점으로 여기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죽음'과 '행복하지 않음'은, '삶'과 '행복'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삶은 '속세에서의' 삶이며, 그 행복은 '지상에서의' 행복이다. 내세가 아닌 현세 속에 존재하는.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일수록 보장된 내세는 요원할 뿐이다. 카뮈의 인간애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하고 있다. '부조리'와 '반항'은 '속세의 삶속에서 영위할 수 있는 행복'을 위한 '각성'이고 '노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는 가치관은, 사회 속에서의 실현 방법을 찾게 하지만. 카뮈는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종교는 '내세'와 '위안'에 너무 촛점을 맞추고 있었고, 사상은 기존 체계에 대한 '무자비한 반대'와 '급진적인 탈바꿈'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래 '탈바꿈'. 말 그대로 가면만을 바꾸는.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이들이 지금 시대에는 얼마나 넘쳐나는가.
그럴지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두 단어라고 카뮈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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