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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네 치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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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훈이네 치킨집

이번이 몇 번째 일까?

도톰한 추억이 겹겹이 싸인 숙대 앞에 있는 훈이의 치킨가게. 나는 그곳으로 간다.

그 추억은 울 스웨터처럼 한 없이 부드러워졌다. 씻을 수 없다. 씻는 순간 쫄아들어 다시 입을 수 없다. 한 올 한 올 엮여진 그 모든 추억들이 마침내 그토록 포근해졌을 때는, 기억들과의 거리가 꽤나 멀어지고 나서였다. 기억이 소실되면 추억이 되었다. 추억에는 세세한 인과가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추억이 된 것들에는 미소를 던질 수 있다.

치열하지 않은 한 주가 시무룩하게 사라질 무렵, 으례히 뭔가 마무리될 즈음에 찾는 보상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이, 이 정도에 불과한 자위에 얼마나 간단하게 길들여져 왔던가. 차라리 몸만 빼앗기는 돼지가 더 나아 보인다. 마음은 절대 내어줄 수 없다. 무의식이 조절하는 마음은 나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자유의지가 있는 기차 토마스]일지라도 영원히 철로 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기관사가 조절하는 연료는 토마스의 원동력이다.

숙대입구역이든 남영역이든 되는대로 내려서 그곳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3호선을 타고 가다가 충무로역을 지나치면, 4호선을 못 타고 그러면 배고픔에 정신이 번쩍 든다. 뭔가에 푹 빠져 있다가 깜빡 잊기 일쑤다. 종로 3가에서 1호선을 탄다. 귓속에는 평균율 제1권이, 프렐루데와 푸가를, 속세와 천국을 쉴 새 없이 들락거리고 있다. 신광초등학교 끝자락을 돌아, 숙대입구 초입부터 언덕을 오르면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고 풍성한 기분이다. 겨울에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까? 평균율에는 기승전결보다는 희로애락이, 그래서 내가 즐기는 단편 소설집 한 권을 읽는 느낌이다.

어렸고 젊었던 나의 밥상머리 추억들이 가득한 와플하우스, 까치네 분식을 지난다. 이 좁다란 일방통행 두 갈래 길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자랄줄을 모른다. 얼마 전의 내 모습 같다. 모습은 바뀌어도, 거리나 사람들이나 가장 왕성하던 시절에 대한 추억을 머금고 산다. 고뇌와 고통에 대한 기억은 빗물에 씻겨 사라졌고, 화사한 추억은 남아 있다. 나는 추억들을 밟고 걷다가 가게로 들어선다.

짧게 주고 받는 인사가 반대편 벽에 닫기도 전에 나는 “한 마리와 맥주 오백”을 외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입은 바쁘다. 내일이면 사라질 하루살이 같은 대화의 연속들 사이로 씹고 마시느라 분주하다. 그들의 이빨은 치킨과 불쾌했던 이들을 번갈아 맡는다. 서로의 마음에 닿지 못한 이야기들은 벽에 붙어 쌓인다. 때때로 벽을 문지르면 폐기된 이야기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삶의 대부분은 추측과 상상이다. 세상을 훤히 내다보지 않고서야 도리가 있을까?

최소한 그것들은 영원히 내 편이다. 그래서 늘 그것들을 현현해 내려고 글을 써내려 간다. 상상력이 풍부하면 삶이 풍성해진다.

https://www.siksinhot.com/P/721110 ---> 요기서 가져온 사진. 생각해 보니 배고픔에 눈이 멀어 한 번도 사진을 못찍었다.


치킨 맛이 기가 막히다. 잠시 귀가 막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의 씹는 소리만 들린다. 나는 이 우리네 전통 방식의 닭튀김이 좋다. 자그마한 소쿠리에 담겨 내밀어진, 소박한 모양의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그 맛이다. 이런 기회를 내게 준 저 오랜 친구가 고맙다.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다 가슴에 어떤 무거운 것이 느껴졌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뭉쳐 있었다. 그리고 허다한 이야기들이 혼잣말 처럼 맴돌고 있었다. 또 다른 나로서 자리매김 하는 시절에, 내 안에 나를 안전하게 가둬 놓았다. 요즘 부쩍 잦아진 활기찬 나의 모습을 꺼내 입고 훈이네 가게로 나들이를 나온 금요일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