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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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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2022 부산국제영화제

갈까 말까 망설였다.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을까?


혼자 가는 여행을 무척이나 즐기는 삶을 살아왔지만, 최근 7년 간은 기회가 전혀 없었다. 오랜만에 조우한 나의 본성이 낯설었다. 지난 화요일 밤이었다.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지인 한 분이 영화와 예술계 인사 몇 명을 초빙하여 씨네 콘서트를 열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이틀 전인 일요일이었다. 그분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문화전문 잡지를 발간해 온 보기 드문 사람이다.

부산으로 향하는 KTX 예약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는지, 내가 원하는 시간에는 입석밖에 없었다.

뭐야! 가는 사람들이 많기는 많구나. 금요일 아침인데도 좌석이 없네.


결국 예약을 마쳤다.

전날 밤에는, 여행을 앞둔 반반치킨 같은 긴장 반, 여유로움 반의 마음을 잔에 담아 마시러 갔다. 친구네 치킨집으로 동생을 불러, 사는 이야기들, 불확실한 확신들, 지인들의 근황 그리고 어느 테이블에서인가 뿜어 나오는 진한 젊음의 향기 하나를 잔에 담았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야 된다는 당연한 압박이 나를 끌어당겼지만, 그에 상응하는 여유와 설렘을 만끽하고 싶은 욕심은 조용히 잠들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잠은 오는데 오는 잠을 맞아 동행하기 어려웠다.

언제나 그러하듯 눈을 감았다 떠보니 6시 28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왜 하필 28이야.

너에게 있는 그 "짜릿한 꿈"이 무엇인지 참 궁금하다


동대구까지 입석이었는데 차량 사이의 간이좌석에 앉아 갈 수 있었다.

열차 차량 사이의 공간은 출입과 무거운 수화물 그리고 화장실을 위한 필수 공간이겠지만, 나에게는 차량이라는 공간을 보조하는 곳으로 보였다. 우리 사회의 확연한 계층들 사이에도 이렇게 애매하지만 그 계층들을 보조하면서 계층간의 여유를 제공해 주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고마움이 느껴졌다.

행신에서 동대구까지는 두 시간. 대구 근처 철로 변 방음벽 너머로 낡은 소형 아파트들이 보이자, 오래 전의 동성로, 성서, 아! 청주 식당, 만 스무 살이었던 어느 겨울 새벽, 친구들과의 첫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였던 동대구역에서 만났던 불량배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추억이라기보다는 기억들. 회색 기억들을 간이 의자 위에 남겨 두고, 객실에 들어가 예약된 좌석에 앉았다. 아늑했다.

입석 탑승권을 가진 나에게 보여지는 차량 내부는, 아늑하고 풍요롭게 보이는 다가오는 시간 속의 바램이었다. 우리에게 기대를 품고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될 미래가 없다면 얼마나 힘든 하루 하루가 될 것인가.


부산에 도착할 즈음에, 그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착 시간을 물었고, 어느 호텔 프론트에 영화 관람권 하나를 맡겨 둘 테니 감상하라는 고마운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20년은 족히 될 시간만에 방문한 부산은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비교는, 비교 대상들에 대한 명확한 실체적 기억이 있어야 하는데, 과거의 부산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서 마치 처음으로 방문한 도시처럼 여겨졌다.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 관람권. 말거나와 진짜야 사이의 쉼표가 참 마음에 든다. 믿거나 말거나 라고 말한 후에, 읽는 이의 반응을 살피고 그래도 못미더웠는지 진짜야라고 확신을 심어주려 애쓰는 그 짧은 순간을, 하나의 기호로 말해주는듯 했다.


영화제 때문인지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많았다. 호텔에서 영화 관람권을 받아 근처에 있는 신세계 CGV로 옮겼다. 상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둘러야 했다. 극장 내 스낵바에서 치킨 핫도그와 생수 한 병을 사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영화 제목은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 (Incredible but True)], 프랑스 영화였다. 깊게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 주인공 부부가 신비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중년 여성은 다시 젊어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패션모델이 될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는 사람. 그 남편은 회사 일에 얽매여, 꿈과 욕망보다는 현실 문제에 더 천착하는 사람. 그 남편의 사장은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만족 시키는데만 몰두하여, 일본산 전자 성기를 장착하고 벌어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 여성 속옷 매장을 운영하는 젊은 그의 애인은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사는 사람.
일종의 블랙 코미디였다. 영화 말미에는 네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무성 영화 형식으로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나는 사실 영화의 내용보다는 여주인공 레아 드뤼케르 (Léa Drucker)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물론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만이었다. 내가 입고 싶은 인물은 없었다.

아 뭐냐. 내가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배우는 왼쪽에서 네 번째 앉아 있었고, 그 옆에서 배경이 되어 준 분들. (왼쪽부터, 사회자, 이준익 감독, 신하균 배우, 한여신님, 이정은 배우 그리고 정진영 배우.)


씨네 콘서트 참관을 위해 비프 광장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는 약 1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영화의 전당쪽으로 옮겼다. 때마침 영화의 전당 옆 대형 무대에서는, 개봉박두인 드라마 [욘더]에 대한 대담이 한창이었다. 드라마의 플롯과 배우들의 소감들을 잠시 청취했다. 한여신 배우의 목소리에게마저 감사했다. 언젠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꿈을 꿔 봤다.

역시 간식은 길거리 간식이 제 맛이제!


지하철을 타고 자갈치 시장으로 이동했다. 상영관 안에서 숨죽이며 먹은 핫도그 하나로는 내 왕성한 위장을 달랠 수 없었다. BIFF 광장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만두 전문점이 있었다. 찐만두 한 팩을 샀지만 가게 안에서 먹을 수 없었다. 광장 입구에 설치된 아치형 철제 구조물의 양쪽 끝에, 그 구조물 밑동을 둘러싸듯 설치된 벤치 위에 앉았다. 단무지와 만두를 번갈아 집어가며 쓱싹 해치웠다.
엉덩이는 걸터 올리고, 시원한 바다 바람은 흡입하고, 주변 사람들과 풍경은 눈에 담고, 만두는 먹고, 물은 마시고 그렇게 짧은 간식 시간을 마치고 씨네 컨서트가 열릴 곳을 찾아 일어섰다.

BIFF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골목.


나는 “광장”이라는 단어에 대한 선입견 -아니 그건 선입견이라기 보다는 개념이 맞겠다.- 때문이었는지 어떤 널따랗게 펼쳐진 공간을 찾았다.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카카오 맵을 등판시켰다. 그런데 내가 서있는 곳이 바로 그 “광장”이라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 광장은? 이건 광장이라기 보다는 ‘BIFF 골목’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보다 훨씬 아기자기 고기다리던 데이트 -갑자기 어릴 적 자주 애용하던 라임이 떠올랐다. 물론 원래는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데이트다. -하고 과도하게 줌인되어 세밀하게 보이는 ‘광장’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광장’이라는 단어의 개념이, 내가 모르는 사이 새롭게 정립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분명 그건 아닐꺼야. 그래도 넓을 ‘광’ 자인데 …….


아까 봤던 프랑스식 블랙 코미디 영화로 인한 일시적 중독 현상일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어쩌면 이건 영화제 주최측의 색다른 유머 코드이자 방문객들에게 던져주는 서프라이즈일지도 몰라. ‘광장’이라고 소개하고서는, 실제 모습을 찾는 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맞이하게 하는 뭐 그런.

왼쪽부터 배창호 감독, 이장호 감독, 김한민 감독 그리고 전찬일 평론가.


비프 광장 아니 골목에서 행사가 예정된 무대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몇몇 지인과 인사를 나누고나서, 무대 앞에 펼쳐진 청중석의 한 자리에 앉았다. 저녁이 다가오자 거센 바다 바람에 힘입은 서늘함이 간간히 오싹하게 했다. 이윽고 전찬일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씨네 콘서트는 시작됐다. 관계자들의 인사와 소개가 이어졌다.

[쿨투라]의 손정순 발행인.

김선희 팝페라 가수.


이장호 감독, 배창호 감독, 김한민 감독, 유성호 문학평론가 및 강태규 음악평론가가 무대 위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콘서트를 이어갔다. 사이사이 세 분 감독들의 작품에서 감정을 고조시켰던 노래들이, 팝페라 가수 김선희 님과 성악가 손가슬 님의 목소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쌀쌀한 날씨와 어수선한 야외의 작은 무대에서 집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텐데도, 두 분은 최선을 다해서 멋진 노래들을 선사했다.

손가슬 성악가.


이장호 감독과 배창호 감독 두 분 모두 앞으로 새 작품들을 선보일 계획들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이장호 감독은, 그동안 많은 작품들을 선사했지만, 뮤지컬 성격의 작품은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어서 꼭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이니 만큼 ‘죽음’이라는 주제, ‘장례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뮤지컬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배창호 감독은 ‘예수의 생애’를 주제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분 모두 기독교적 사상과 신앙을 그 토대로 하고 있는 듯했다.
김한민 감독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유명 감독임을 보여주듯, 활기차고 자신감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김 감독이 [최종병기 활]과 [극락도 살인사건]을 연출한 줄은 몰랐었다.

세 분 감독들의 업적과 그 의미에 대한 찬사는 생략하겠다. 그 족적들이 워낙 큰 분들이라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할듯 하다. 전찬일 평론가의 유머는 추위로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에 커다란 웃음을 선사했다. 요즘처럼 디지털 매체가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때에도 문화전문잡지를 발간하는 뚝심을 잃지 않고 있는 [쿨투라]의 산파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뚝심에는 이런 잡지의 의미를 이해하고 여러 경로로 지원하는 문화계 인사들의 힘이 뒷받침되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잡지의 전성시대는 물론 그 생명력도 오래전에 끝났지만, 향수를 가지고 있는 나 같은 이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사라진 문화와 돌아가신 분들. 되돌릴 순 없지만 추억하고 추모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인간이다.

내 평생 유명인과 단둘이 사진 찍어본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다. 1944년생이신 고령에도 불구하고 손은 따스했고 눈에는 창작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젊은이들의 그것과는 달리 원숙하고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숨결을 읽을 수 있었다.


예정된 콘서트의 막바지에, 이장호 감독과 배창호 감독에게 질문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별안간 두 번째 질문자가 되기 위해 오른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바로 마이크가 쥐어졌고, 이장호 감독에게 질문을 했다. ‘죽음과 장례식’을 주제로 하는 그 뮤지컬 성격의 작품을 언제쯤 감상할 수 있을 것 인지에 대한 그야말로 단순 무식한 질문이었다.

내가 아직 죽을 정도의 나이는 아니라 근시일은 아니지만, 죽기 전에 꼭 해볼 생각이다.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
이것도 내 일생 처음. 유명인의 싸인을 그것도 저자로서 자신의 저서에 친필로 한 싸인을 받았다.

간결하고 명확한 대답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이장호 감독과 한예종의 김홍준 교수가 공동 저술한 [이장호의 마스터클래스]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그것도 커다란 행운이라고 여겼는데, 모든 순서가 끝나고 난 후 무대 위에서 둘이 사진을 찍고, 선물로 받은 책에 친필 싸인까지 받았다. 너무도 신나고 즐거운 순간이었다. “축복”이라는 단어 아래의 내 이름과 싸인과 날짜.
내 인생 하일라이트 중 하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무지개의 곁에 서서, 그 화려한 스펙트럼을 손으로 만져 본 느낌이었다.

여행의 막바지는 끈적한 졸음과 달콤한 잠이었다. 객실은 더할 나위 없이 고요했다. 딱 두 사람만 빼면 그곳은 마치 여행자들의 포근한 안식처로 결말을 맺을 뻔했다. 두 살쯤 되었을까. 여자 애기의 그것이었음에 틀림없었을 그 너무나도 어여쁜 목소리로 이가 아프다며 칭얼거렸다. 수 없이 반복되는 같은 단어로 구성된 칭얼거림은 내 얼굴에 미소를 못 박았다. 엄마 아빠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결국 광명역 도착 훨씬 전부터 출입문 공간으로 미리 나가 있어야 했다. 나만 아쉬웠을까.
아시아계 외국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남성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건 그 애기의 칭얼거림과는 전혀 다른 소음이었다.

같은 인간이 내는 소리인데 어찌 이리도 느낌이 다른가.


역시나 세상은 나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달라질 수 있다. 세상의 주인은 나다. 인식이 대상물에 앞서기 때문이다.
그 불편한 소음 제공자도 소음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서울역에서 내렸다. 다시 서울역을 출발하여 행신으로 가는 KTX의 발걸음이 더디게만 느껴졌다. 예정된 도착시간인 자정을 조금 넘겨 도착했다. 짧은 한국 생활 동안 내 손으로 택시를 잡아서 탄 경험이 없어서 긴장되기 시작했다. 일단 택시를 제외한 대중교통 시스템은 모두 끝난 상태였다. 카카오 맵에 있는 T-택시와의 수 차례에 걸친 씨름 끝에 가까스로 예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잠들기 전까지 내 마음 속에는 풀어놓고 싶은 오늘 하루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조금 흥분된 상태였다. 1만 2천 보 넘게 걸었던 다리는 피곤했고 눈도 뻑뻑했지만, 마음속에는 한여름 비 맞은 잡초처럼 무성한 신선함과 풍성함이 한가득이었다.
왠지 오늘이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충만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시각은 2시 28분이었다. 나는 그날 20시간의 환상적인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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