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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 깃든 단상 2023 (문닫음,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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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이 깃든 단상 2023 (문닫음,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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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5
걸으면 보이는 수 많은 개미들, 곤충들. 자연의 법칙은, 신의 섭리는, 우연에 기대서라도, 저들을 밟지 않도록 시공간을 구성해 놨을까?


우리는 다시 예수에게 길을 물으려 한다. 개인적인 삶의 여정 안에서 만나는 실존적인 질문들과 우리가 살아가는 정치적이고 사회-경제적인 현실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들이 처한 현실적인 난제들과 지역적이고 지구적인 차원의 생태 위기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다시 예수에게서 길을 찾으려 한다.

이 작업은 역사적 예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기억을 전승하는 기록들을 다시 읽음으로써 수행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작업은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학문적 연구의 맥락 안에서 연구 방법론, 사료, 성과와 한계에 대한 논의에 참여할 것이다. 우리의 예수 다시 읽기는 비평적인 작업이다. 텍스트 해석을 위한 엄밀한 방법론에 따라 역사적 예수를 읽으려 한다. 그리고 텍스트 연구 뿐 아니라 다양한 고고학적 발굴과 발견도 이 예수 연구에 포함될 것이다.
-[예수 다시 읽기, 낯선 시선으로], 송창현 신부-

이 글이 세상에 나온 때가 2016년 4월. 그 후 7년 3개월이 흘렀다. 나도, 교회도, 세상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균형과 조화로 향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늦지도, 너무 보잘것 없지도, 그리고 정강이 뼈가 꺾이지도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한다.



230720

〈마가복음〉 공동체의 주요대중이 오클로스(οχλος)였다는 주장을 처음 편 사람은 일본의 성서학자 다가와 겐죠(田川建三)다. 그는 〈마가복음〉에서 사용된 ‘오클로스’를 특별한 사회학적 범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이 복음서에서 오클로스는 세리나 매춘여성 그리고 병자처럼 촌락사회의 정상적 질서 속에 편입되지 못한 자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은 ‘속하지 못함으로써 존재하는 자’를 가리킨다. ‘속함’과 ‘속하지 못함’이 나뉜다는 것은 그들을 가르는 ‘보이지 않은 장벽’이 일상의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마가복음, 예수에 대한 민중의 기억], 김진호 목사-

무수한 장벽들이 난무하는 이곳, 우리 주변의 셀 수 없이 많은 신종 자발적, 비자발적 오클로스들.


희망은 없어 보이고, 교만(驕慢, Pride, 라틴어 superbia), 시기(猜忌, 질투, 嫉妬, Envy, 라틴어 invidia), 분노(憤怒, Wrath, 라틴어 ira), 나태(懶怠, Sloth, 라틴어 pigritia seu acedia), 탐욕(貪慾, Greed, 라틴어 avaritia), 식탐(食貪, Gluttony, 라틴어 gula), 색욕(色慾, Lust, 라틴어 luxuria)만 가득해 보이는데, 정작 그 땅의 주인들은 모를까?


230718
자식에게 얼마만큼의 당근과 채찍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가늠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저마다의 특성도, 처한 환경도 다를 테니. 다만 확실해 보이는 것은,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그 기준이 돈이 된다면 그 자식이 행복한 자식이 되기가 쉽지는 않을 듯.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마태 11:20~24-

예수 같은 분이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지금 오시면 더 속이 터지실 듯.


230712
티브이에서는 유명 전문가들이 나와 건강 염려증을 부추기고, 의사와 제약회사는 제 발로 굴러들어 오는 돈을 주워 담기 바쁘다. 적당히들 하자.


230710
손에 쥐자마자 후회할 것들과는 이별하자. 허나 앞으로도 셀 수 없이 부침을 거듭할 그 끈질긴 난동들을 유연하게 다스릴 수 있을까. 미움을 거두자. 미움은 내 의식의 들여다보는 행위. 들여다보면 그것들도 나를 들여다볼 것이다.


저 노인들은 우리의 과거, 나와 함께 서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그대들은 현재, 저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 아이들에게 들인 현명한 정성만큼의 노년이 그들을 기다린다. 나만 만족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돈이 그대를 지켜주지 못한다.


저 강물 위에 일렁이던 물결 한 조각. 잠시 지는 해의 햇살을 내 눈에 전해주곤 이내 사라져 버렸다. 어떤 이의 인생이었을까.


구성원들의 자율과 양심에 기대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할 자신도, 능력도, 관심도 없는 곳 같아 보인다.


230709
이것이 도대체 '일기예보'인가. 아니면 '일기통보' 또는 '일기중계'인가. 수시로 바뀌는 일기예보에 종잡을 수 없다.


230705

사랑에 대한 전통적 이해는 사랑이 쾌락과 최선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적 존재로서 인간과 문명적 존재로서 인간을 아우른다. 샤르댕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세상의 존재가 물질-정신이라는 한 종류의 존재이듯이, 이러한 존재를 움직이는 사랑도 모두 하나라고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무생물이나 생물의 사랑과는 다를 수 있다. 인간은 우주의 새로운 원리이기 때문이다. 인간화된 사랑이란 반성적 사랑, 선택하는 사랑, 자유로운 사랑이다.
-[테야르 드 샤르뎅], 김성동-

신부님이 너무 많은 것을 아셨던 듯. 보통 선택하고 반성하고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 사랑의 과정 아닌가.


230703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처하게 되는 위험은 사랑의 추동력 때문에 이성적 자기 통제를 상실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창조적 결합에 이르지 못하고 상대방을 자기 속으로 흡수함으로써 인격적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것에도 있다.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나-너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나- 그것 관계'(부버, 2006:15)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자기기만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샤르댕이 지적한 것처럼 허무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샤르댕의 이러한 비판은 그 당시보다 더욱 유효하다고 하겠다.
-[테야르 드 샤르뎅], 김성동-


'상대방을 자기 속으로 흡수함으로써 인격적 관계를 가지지 못하는 것', 이것 정말 중요한 이야기.


230630
일 년의 반이 지나갔다. 많은 것을 했지만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은 일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가까스로 꼽아본다. 다행히도 나는 너무 많은 것들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은 규칙을 세우고 싶다. 접촉하는 사람을 가치와 존엄에 따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하지 말라. 다시 말해 그 사람이 의지가 나쁘다거나 이해력이 제한되어 있다든지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러한 태도는 인간에 대한 미움이나 경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신 그의 고통, 궁핍, 두려움, 아픔만을 주목하라. 이렇게 할 때 그와 친근감을 느끼고, 공감하며, 미움이나 경멸 대신 연민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연민이 복음서가 말하는 아가페(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미움과 경멸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이 '존엄'에 대한 탐색보다 오히려 연민이라는 관점이 진정으로 적합한 것이다.
- 쇼펜하우어-


선한 이들은 타인을 미워하는 일에도, 타인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에도 못 견뎌한다.


사랑에서 비롯되는 결혼은 종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관련된 사람들은 분명 그들이 그들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고 있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그것의 진정한 목적은 그들 자신에게는 낯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과 결혼의 진정한 목적은 그들을 통해서만 오직 가능한 한 개체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19세기 초에 활동한 철학자가 현대의 세태를 말하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의심 많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염세주의자였기에, 깊은 통찰력을 보여 줘도 때로 그의 앞에서 멈칫한다.


230626

물질과 정신은 결코 두 가지 다른 실체가 아니고, 같은 우주적 재료가 보는 방식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두 ’ 상태‘, 두 측면인 것이다.
By teihard de Char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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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물질과 정신은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정신이 되고 있는 물질이다. 세계에는 정신도 물질도 없다. ‘우주의 재료’는 정신-물질 (Spirit-matter)이다. 이것 외의 어떠한 실체도 인간 분자를 산출할 수 없다.
By teihard de Chardin
-[테야르 드 샤르뎅], 김성동-

샤르댕은 데카르트와 달리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이 적은 물질일 뿐이며, 우리가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질이 적은 정신일뿐이다. 물질은 그 복잡성이 증대함으로써 정신이 된다. 생명은 물질과 정신의 중간 정도의 복잡성을 가지고 물질과 정신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테야르 드 샤르뎅], 김성동-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원론의 세계 속에서 이 두 가지가 하나라는 세계관을 주장했던 성직자이자 과학자였던, 샤르댕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오랫동안 상상해 왔고 나의 내면 속에서 상존하던 세계관과 유사하다. 산과 바위에도 신령함이 있다는 옛사람들의 자연친화 또는 종속적인 그것과도 통한다.
빛이 입자와 파동이라는 상반되는 성질을 동시에 갖듯, 물질과 정신 또는 의식도 한 몸일지 모른다. 우주의 모든 것이 빅뱅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면……


230623
AI에 대한 대안이 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컴퓨터와 연결하는 것이라니. 비록 인간이 전기신호와 화학물질에 의해 작동하는 생체 기계이긴 해도, 편리를 위해 개발한 기계의 위험성에 대한 대안으로 또 다른 기계에 의지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다수의 일반 사람들에게 첨단 기술이 선사하는 혜택들이 모두 다 꼭 필요한 것들인지 의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알고, 너무 오래 살고 그리고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들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얼굴이나 체격이 뛰어나게 잘생긴 것도 멋있는 일이요, 유행과 체격에 맞추어 옷을 보기 좋게 입는 것도 멋있는 일이다. 그리고 임기응변하여 재치 있는 말을 잘하는 것도 역시 멋있는 일이다.
그러나 겉모양의 멋이나 말솜씨의 멋을 대했을 때, 우리는 가볍고 순간적인 기쁨을 맛볼 뿐 가슴 깊은 감동을 느끼지는 않는다. 세상을 사는 보람을 느낄 정도로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역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무형의 멋, 인격 전체에서 풍기는 멋이 아닌가 한다. 바로 그 무형의 멋 또는 인격의 멋을 만나기가 오늘 우리 주변에서는 몹시 어려운 것이다.
- [멋없는 세상 멋있는 사람], 김태길 -

230622
시간은 없다. 세계는 모두 너의 해석이다. 매일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지 말라?


많은 이들이 소금 걱정. 한편, 오랫동안 방대하게 오염된 해양환경을 들여다보면,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일 거야. 그리고 육지, 바다, 하늘은 모두 한통속이다. 어디 한 군데라도 고장 나면 지구 전체의 생명유지 시스템이 무너질 텐데. 병원이나 치과는 빨리 가면 갈수록 좋을 텐데.


우리가 어려서 우리 어머니들에게서 느끼던 그 '어머니'를 오늘의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느끼게 하지를 못한다. 사서 입히고 사서 먹이는 동안에, 우리는 정성과 사랑이 식어 간 것이다. 뼈저린 고생이 없는 대신, 그 뒤에 오는 샘물 같은 기쁨도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고독하게 자라는지도 모른다. '편리'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뜨겁게 사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 [설], 전숙희 -

어머니는, 엄마는, 이기심에 대한 경계와, 이기심으로 인한 생존의 확률을 높이는 양가감정적인 가르침을 준다. 그리고 사랑과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의 절묘한 경계를 보여주며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세 가지의 균형이 무너져 원치 않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뜨거운 마음의 화로를 받치는 세 개의 다리다. 사회도 마찬가지.


230614
대를 잇는 조선의 노비도 법률과 제도의 보호를 받았다. 현대의 자발적인 노예들은, 그 보다 더 나은 환경인데도 오히려 절대적인 추종을 고집한다. 정신적인 예속은 육체적인 속박보다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230613
20대와 "낼모레"분들이 가득 섞여 있는 한 대학병원. 멀지 않은 때에 "낼모레"분들의 비중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하니....
요즘의 연령대별 느낌을 그려본다. 20대는 신생아, 30대는 유초등 어린이, 40대는 청소년, 50대는 청년 또는 영계, 60대는 성인, 70대는 중장년, 80대는 노인. 나만 이렇게 느끼고 있나?


모든 권력은 누군가에게 빌린 것이다.
- [차마설], 이 곡 -

230610
대부분 무시하는 어린이보호구역을 왜 만들었을까. 둘 중에 하나. 머리와 발을 써서 만들지 않았거나 시민들의 소양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둘 다 이거나.


230609
"남자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규정하기 어렵지만, 본능적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남자들이 -나를 포함하여- 많아 보인다. 왜지?


230607

시장과 국가가 일국의 경계들을 가로지르는 세계의 문제들을 관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많은 개인들, 공동체들 그리고 시민사회조직들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특수한 목표들—음식, 물, 깨끗한 공기, 환경보호, 에너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인권, 토착민의 권리, 기타 여러 사회적 관심들—이 본질적으로 전지구적 커먼즈 이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개발 전문가이자 커먼즈 옹호자인 제임스 퀼리건(James Quilligan)-


동의한다. 동의해요?


230603

하늘은 저리도 맑고 녹음은 또 이리도 푸르른데, 저 하늘을 이고 이 땅을 밟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도 무겁고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며 다닌다. 정녕 우리에게 안식과 평안은 허락되지 않을 것인가. 오직 저 하늘과 이 땅의 밑에 가루가 되어 담겨 있는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일까.
묻혀 있는, 한 때는 내게 중요했던 사람아, 진정한 안식과 평안 속에 있는가.


230602
사건들을 기술할 때, 느끼는 감정과 생각의 표현은 최소화하고, 대부분일지도 모를 나머지 부분은 언제일지도 모를 미래의 어느 시간의 나에게 미루어 놓는다. 지금의 내가 아닌 나에게 ...... 그는 지금의 나 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일까.


230530
나를 사로잡는 명분과 이유는, 하늘을 날고 심해 속을 헤엄치게 한다. 그런데 사


적당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이고서 내다본 버스 차창 밖의 여름은, 오랜만에 맛보는 사색의 자유를 안겨 주었다. 별안간 쏟아지는 글귀들이 머리와 입속에서 휘돌았지만 글자로 옮기지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지하철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가 봐.
옥수역과 압구정역 사이의 한강이 그리도 예뻐 보이고, 흐리거나 맑거나 하늘은 한 없이 관대해 보이고, 함께 뜀박질하는 다리 위의 차들 조차, 뮤트 되고 슬로 모션 처리된 영화의 한 장면 속의 객체들처럼 기껍게 다가오는 걸 보면, 그리고
지하철 속에서도 사람들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며 각자의 특징들을 추출해 내느라 여념이 없는 나를 보면
아무래도 책과의 대화를 넘어 주변의 모든 사물들과의 교감을 갈구하는 사람인가 보다.

글자로 옮기지 않았지만 조금도 아쉬움이 남지 않은 매우 짧고 값진 여행이었다.


230526

단 한 시간이라도, 또는 예외적인 어떤 경우라 해도, 어떤 것이든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느낌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일단 인정해 버리면 우리가 편한 마음으로 저지르지 못할 범죄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사랑 없이 인간을 대할 수도 있는 환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환경은 없다...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가만히 앉아 있어라. 사물, 당신 자신, 뭐든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전념하되, 다만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마라.. 한번 사랑 없이 사람을 상대해 보라... 그러면 당신에게 닥칠 고난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다.
-[부활], 톨스토이-

230525
왜 체홉이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위대한 사람이냐고?

체호프는 건강이 나빴고(그는 마흔넷에 결핵으로 죽었다) 가족은 화목했지만 궁핍했다. 그는 젊어서 유명해진 탓에 사람들이 이런저런 요청으로 계속 그를 귀찮게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드러운 사람이었고 살아 있음을 기뻐하는 듯했으며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트로야는 말했다. "그는 신중함이 교육을 받았다는 표시라고 생각했다. 품위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전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늘 즉석에서 관대함을 보여주며 짧고 부산한 삶을 살았다. 자신에게 오는 원고는 무엇이든 읽고 논평했으며, 궁핍한 사람을 모두 무료로 치료해 주었고, 러시아 전역의 병원과 학교에 기부를 했는데 그중 다수가 오늘날에도 운영되고 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230524

내가 세상에서 본 악의 대부분은, 내가 당하는 쪽이 된 못된 짓의 대부분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내가 남에게 저지른 못된 짓의 대부분은) 선한 의도로 자기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끝까지 예의를 지키고 타협을 하려 하고 약간 잘못된 인식을 가졌지만 열심히 일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저질렀다. 그들은 일을 끝까지 생각해 보는 성향이 아니거나 시간을 들여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았고, 자신이 일부를 이루고 있는 신념 체계의 부정적 결과를 피할 수 있었거나 아니면 그 결과를 모르는 채로, 문화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왔고 스스로 질문해 보지는 않은 편의에 그리고/또는 '상식' 개념에 굴복한다...... (여기에서 나는 큰 범죄자들, 괴물 같은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 과대망상 소유자들, 너무 큰 부나 명성이나 성공 때문에 현실과 차단된 사람들, 엄청나게 오만한 사람들, 날 때부터 권력에 굶주린 사람들, 소시오패스 그리고/또는 사이코패스는 젖혀두었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조지 손더스-

모든 것은 평화롭고 고요하며 오직 말 없는 통계만이 이의를 제기하지요. 아주 많은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고, 아주 많은 보드카를 마셨고 아주 많은 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하지만 이런 상태는 분명히 불가피하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말없이 그들의 짐을 져주고 있어 편안한 거잖소. 이런 침묵이 없다면 행복은 불가능할 거요. 하지만 이건 집단적 최면이오. 모든 만족하고 행복한 자의 문 뒤에는 반드시 작은 망치를 든 불행한 사람이 있어 계속 거기 서서 문을 두드리며 그가 아무리 행복하다 해도 조만간 인생은 발톱을 드러낼 거라고, 고통이, 그러니까 병과 가난과 상실이 찾아올 거라고, 그때가 되면 지금 그가 다른 사람들을 보거나 듣지 못하듯이 아무도 그를 보거나 듣지 못할 거라고 상기시켜 주어야만 하오. 하지만 망치를 든 사람은 없소. 행복한 사람은 바람 속 사시나무처럼 일상의 작은 걱정에 희미하게 파닥거릴 뿐 편하게 살고 있소. 그렇게 모든 게 아무 문제없소.
-[구즈베리], 안톤 체홉-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위대한 사람.


230522
사람에게도 급이 있다. 명품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품격은 불가능하다. 내 인생의 목표는 내면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신의 직장?" 어디에 있을까? "신"이 아니면서 왜 찾는 걸까?


230519
여름의 태양이 익어가고 있다!


당장 마실 수 있는 물을 뭐 하러 굳이 이웃나라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까지 바다에 버리려 하느냐. 마시기 거북하면 농업용수나 그 더러운 몸뚱이 씻는데 쓰지 않고서. 언젠가는 그 모든 죄 값을 넘치도록 받을 것이다.


230518
그대에 대한 소문은 비굴하고, 지저분하기만 했습니다. 허나 마침내 마주하게 된 그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흔들어 놨겠지요. 나의 것도.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 시간의 구속을 전제하면 참이 아니겠죠?
상처 입고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위로가 있으시기를.


230517
나무 그늘 아래, 핸드폰에 몰입해 있는 젊은 엄마 주변을 두 아이가 맴돌며 놀고 있다. 일 때문에 고단하다는 핑게로 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두 아들에게 지지리도 독서를 안한다며 힐난하던 한 젊은 아빠가 떠올랐다.


230516
범죄의 최대 폐악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불신과, 더욱 강화되어 가는 규제와 통제다. 불편과 불안은 가중 되고, 자포자기와 범죄로 이어지는 악순환. 거대한 탐욕에게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시스템이 꽤나 허술해 보인다.


현재의 삶이 팍팍하면 할수록, 과거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들은 더 많이 잊혀진다. 제한된 마음의 창고. 애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왜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까. 그때 보다 더 행복 하다고 느낀 때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창고를 넓히자. 행복의 기억을 더 많이 살려두자.


230511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었는데, 마치 꿈이 지워지듯 날아가 버렸다. 초여름 같은 봄 속에서, 겨울을 본다. 호수 같은 그 겨울에 던져지는 돌덩어리들.


허공에 무리지어 떠있는 저 콘크리트 상자들. 빈틈 없이 꽉들어찬 꿈과 희망과 한숨과 근심들이, 지는 햇살을 받으며 저들을 담고 있다.


230504
타인의 경험을 내것으로 만드는 '공험'능력이 높다면, 불필요한 소모를 줄일 수 있을텐데.


230502
주변에 어중되고 허술해 보이지만 의외로 도움이 되는 분들이 있다. 그 분들께 감사를.


230427
이 소소한 고마움. 만나기 힘든, 작지만 따스한 마음. 행복한 순간들이, 아닌 때 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두 사람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230416 + 1
물에 빠졌는데 구하지 않아서 죽고, 서로 뒤엉키다 깔려 죽고, 음주 운전 차에 치어 죽고, 전세 사기 당해 죽고, 몰카에 죽고, 사이비 종교에 죽고, 생활고에 죽고, 미세먼지에 죽고, 살인적인 물가에 죽고, 형편을 넘는 소비에 죽고, 이제는 마약까지...... 한 아이가 태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제 명에 죽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세상인가. 무슨 일이 터지면 잊지 않겠다고 한다. 잊지 않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뿌리 채 바꾸지 않으면, 살아 남아서 잊지 않겠다는 사람 조차도 남아나지 않을것 같다. 세상이 이런데도 지지하는 정당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을 보면 가엾기 짝이 없다. 누구를 위한 게거품인가.


230412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 그만 좀 하자. 더 깊이 더 넓게 더 자주 생각하고 바라보고 나누자.


230410
신상필벌이 없는 곳에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신을 믿게 되면 고뇌도 불확실함도 회의도 절망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관념을 믿고 있을 뿐이다.
- 매들린 랭글 Madeleine L'Engle-

230408
목자의 탈을 쓴 한 색마가 나의 단상을 깨웠다. 얼마나 어리석어야 색마에게 영혼과 몸을 내줄 수 있을까.


삶이란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 삶이란 더 이상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삶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삶이 어렵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삶이 어려운 것이라는 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삶에 대하여 신음한다.
그들이 가진 문제에 대하여 신음하고, 그들이 지고 있는 짐에 대하여 신음한다.
마치 삶이란 쉬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에 신음하는 꼴이다.
그들의 신음소리 뒤에는 비현실적인 믿음이 있다.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부당하게 주어졌다는 믿음이다.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다.
우리는 삶의 문제들 앞에서 신음하고 싶은가, 해결하고 싶은가?
- [끝나지 않은 길], 스캇 펙 Scott Peck-

230329
단상이 안 떠오른다. 장상만 가득하다.


230323
스스로 알고있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모습이 다름을 알고 있는가.


230320
"정의"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구현되는 모습을 보면, 거지 나사로가 된 느낌이다. 현실 세계에는 명확한 악인도, 뚜렷한 "정의에 대한 개념"도 없다.


만족할만큼 길다란 "행복"을 본 적이 있나요. 감사하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행복.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면 나의 행복은 더 자주 더 길게 나와 함께 하리.


230315
도시의 미어캣들은 두 손을 모으고 바로 앞을 내려다 보고 있다.


지하철에서 신문 들고 읽는 사람을 보다니. 오늘 보기 드물게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보다.


보기 드물게 힘든 날이었다.


230310

시간과 공간과 사건들을 통해 몸소 체험함으로써 체득해야 할 연륜을, 검색과 동영상을 통한 남의 것으로 대신한다. 스스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함은 물론 다양성이 부족한 다소 획일적인 인간 유형들이 쏟아져 나온다.


220309
적성검사를 할 때마다 고민한다. 어떤 유형으로 보여야할지.


30대의 전직 국가대표의 인터뷰를 듣다가,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역시 나이를 떠나서 한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꼈다.


230308
집을 나서는 코에 풍기는 바람이 남풍이다. 늘상 북풍이었는데. 계절이 쉽게 오간다고? 아니다. 세상 전체가 몸부림을 친다.


뭐가 맞아? 끝까지 못봐서 잘모르지만 게보린 광고는 아니겠지?


230306
소비자가 아닌, 수단이 아니기 위한, 생산자가 되기 위한 부단한 노력.


자신들의 어두운 미래가 불보듯 뻔한데도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 그 용기와, 후손들의 암울한 삶이 훤히 보이는데도 바꾸지 않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가. 광야의 민족이여!


피해 당사자들이 원치 않는 방식을, 거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고집하는 저들은 어느 나라의 관료들인가. 방파제의 그늘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치욕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230228
젊은 세대는 모두 출구에 몰려있다. 어느 곳에서든 깊은 쪽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정신의 깊이도 마찬가지일까.


230226
뉴스 속에 담긴 세상 보다 실제 세상 속에, 평범하지만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비교도 되지 않게 더 많이 있음을 확신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건과 사고들을 일반적인 것들로 느끼는 것은 자유겠지만, 더불어 사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230224
과연 평론들이 읽어내는 그 복잡하고 다채로운 해석의 얼마만큼이 실제 창작자의 의도와 일치할까. 일치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평론을 해석하거나 원작자의 의도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평론해가 필요한가.


다시 내게 돌아온 그 느낌. 오랜만이다. 나ㅢ 보물. 나ㅢ 즐거움. 떠나지 말았으면.


어쩌다 어떤 남자의 양말을 보게 됐다. 뭐지 저거. 스타킹인가? 굳이 왜?


수 많은 글들을 읽다가. 생각의 여기저기에 새로운 집들이 세워지고, 쓰러졌던 것들은 다시 일어서고. 그러다 어느 날 내 집을 잃어 버렸다.


갑자기 -진짜로 별안간- 92년 속의 한 여인이 확 뛰어 들었다. 변변한 울타리도 없는 나의 대지에 곤두박질 친 그녀의 행색은 남루하여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내, 빛이 비추이듯 나타난, 조용하고 수줍은 옷차림에 오버랩 되어, 저멀리 사라져 버렸다.


200222

…… 기술이 유용하다 보니 인간은 자력을 키우는 훈련에 소홀해질 수 있다. 신체의 힘이 약해진 건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사실이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스스로 움직이지 않을수록 근육은 자꾸만 위축될 것이다. 따라서 신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기술과 신체 건강, 그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 택해야 하는 문제다.
기억력, 집중력, 상상력, 심사숙고 같은 정신적인 힘 역시 잃지 않으려면 훈련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스스로 노력하거나 ‘깨어 있지’ 않고 남들이 상상하거나 생각한 것 혹은 ‘딴생각’이나 딴짓하게 만드는 것에 혹하는 마음이 너무 크다. -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서문 중에서, 라이너 풍크 -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몸이 얼마나 곧바로 긴장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곧장 폭력의 수단을 기웃거리는지, 폭력의 수단을 찾을 수 없거나 갖고 있지 않으면 얼마나 절망하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중에서 -


성격이 급한 것인지,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잘 지켜봐야겠다. 나 자신 의심스럽다.


230221
매일 새벽, 같은 시각에 같은 버스에서 하차하는 저 노인, 오는 길인가, 가는 길인가. 하루의 시작과 끝의 길이가 더 짧은 이여. 꼭 끝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가장 사랑하고 보람되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10년을, 20년을 더 살지, 언제고 죽을지, 모르는데, 죽음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남들의 것이라고 여기는 우리. 지금 매 순간, 하루하루 즐겁게, 그리고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게 살면 되지.


230217

그 잔혹한 일본 놈들만 몰아내면, 서슬 퍼런 인민군들만 물러나면, 지긋지긋한 군부독재만 사라지면,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새 세상이 올 줄 알았지?


혈골다기, 액다이력, 순공어증, 환증트진.
골뱅이의 위력.


230216
한없이 깊은 침잠의 심연. 한때는 늪이었는데 그나마 이제는 물이 되어. 그래서 더 빨리 더 깊게. 버릴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검붉은 꽃들이 가득한, 벽에 갇힌 스토르게의 들판이 되살아났음이 들려오고.
어떤 아픔도, 두려움도 견뎌낼 수 있기를 소원하며 자랐을 그 장난기 가득했던 아이 생각도 나고.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있니. 가지 않아도 됐을 길을 힘들게 가지는 않았니. 너의 그 여리고 투명했던 마음이 보고 싶구나. 데리고 돌아가고 싶구나.


이렇듯 존재 수단은 존재 목표와 소유 목표 모두의 달성에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수단을 목표와 결합시키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상태가 나온다.
소유를 위한 소유, 존재를 위한 소유, 존재를 위한 존재, 소유를 위한 존재.
- <에리히 프롬>, 옌스 푀르스터 -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교 1 학년. 그 아이와 친구들이 잠시 안고 있다가 버린 그 꿈들은, 네 가지 중 어떤 것인가.


230215

이 얘기를 다시 끄집어 올리는 이유는 아렌트의 아이히만 분석이 틀렸다는 연구 결과를 알림과 동시에, 이제 ‘악의 평범성’ 너머를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속았다.", 한겨레 21, 이동기 -

실행 동기,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선험적인 판단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에게서도 관찰되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 인간이라면, 어떤 종 Species인지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물학적인 분류가 아닌 정신분석학적 '종' 말이다.


판교 파슈문데 까페

누구를 위하여?


인간은 자유로울 때에만 자아를 실현하여 “그가 그 자신일” 수 있다. 자유로울 때만 인간은 “그가 가진 모든 감정과 지성의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고 적극적이 될 수 있다. 긍정적 자유는 통합된 전체 인격의 자발적 활동이다.자발성은 자유로울 때만 가능하며, 자발성을 경험하려면 인간의 이성과 자연의 통합이 필요하다.자발적 활동을 통해 인간은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고 자연의 통합적 일부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통합되어도 여전히 자기 자신을 느껴야 한다. 다시 말해 권위적 성격처럼 사회나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옌스 푀르스터 -

몇 번을 읽어봐도 감이 오질 않는다. 우리에게 이런 경험을 할 기회가 있었던가. 그리고 지금의 사회에서 실현이 가능한 일인가. 정치던 학문이던 종교던, 누군가는 가능한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밥값, 이름값을 하는 권위가 필요하다.


230214
버스 맨 뒤의 높은 의자에 앉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뒤통수와 서있는 이들의 옆얼굴. 다들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어여쁜 작은 참새 한 녀석. 제 부리보다 훨씬 커다란 하얀 쪼가리를 연신 들었다 놨다 한다. 먹으려는 것일까. 부디 플라스틱이 아니길.


꽃다발을 든 사람들이 눈에 띈다. 발렌타인즈 데이! 어차피 한 주머니에서 나갈 돈이면 굳이 ....... 사랑은 매일 해야지 기념일이라고 굳이 ......
그런데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


스탠퍼드 감옥 실험
실험을 설계한 짐바르도 Philip Zimbardo는 참가자들을 불러 간단한 역할을 배정했다. 한 집단에게는 간수 역할을, 나머지 집단에게는 수형자의 역할을 맡겼다. 몇 시간이 지나자 이들은 역할에 맞게 행동했고 심지어 이전에 가졌던 개인의 가치관에 위배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비디오를 보면 간수들의 사디즘적 행동도 목격된다. 이 실험 결과는폭력이 탄생하기 위해 권위적 성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으로 자주 인용된다.
- <에리히 프롬>, 옌스 푀르스터 -

완장 체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님이 확실해 보인다. 제대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곰과 호랑이가 견뎌야 했던 수고와 인내가 필요하다.


230213
아, 이 무섭게 끈질기고 음침하고 불투명하고 두껍게 짓누르고 에워싸는 공기. 무섭다.


불리한 인격 발달은 교육 방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사회 현상의 탓도 크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극장과 라디오의 뉴스가 그랬듯 언론이 보도 내용을 임의로 바꾸어 진짜 중요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을 잃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과학적ㆍ예술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보도하던 신문들이 바로 그 지면에 똑같이 진지한 태도로 신인 연기자의 멍청한 생각과 식습관을 보도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에리히 프롬> 중에서

통찰력 있는 지성인들의 위력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1941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한, 아니 어쩌면 점점 더 그 의미가 더해가는 일갈을 던져준다.


230212

'평균 실종'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전망한 2023년 키워드-


그동안 사람들이 평균, 기준, 통상적이라고 여겼던 개념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등장하게 될까.


230209
오랜 시간을, 이드에서 자아로 가기 위해 몸부림치며, 그 긴 고통의 터널을 헤집고 나왔던 그가, 어느새 너무도 쉽게 그 낡고 초라한 이드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RIP 그대의 자아!


살면서 뜻하지 않게 마주치는 따스한 마음들. JS, EC 고마워요. 돈 걱정 없이 쉬는 날이 많은 삶을 기원합니다.


230208
핸드폰과 이어폰으로 잠시나마 주변과 단절된 대중들. 몸은 함께 있어도 "같이 또 각자". 어쩔 수 없이 가야 할 곳을 향하는 마음은, 금요일 오후만을 바라고 있다.


내 옆에 앉은 아가씨 -이겠지? 설마-가 조느라 한 팔을 내 허벅지 위로 툭.


- [에리히 프롬], 옌스 푀르스터 -

프롬이 주장하는 모든 부분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사랑과 심리학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의 속성에 대한 통찰력은 놀랍다. 사랑도 창작을 위한 고뇌 가운데 하나이며, 예술이다.


230206
실패한 일들을 되돌아보면 최소한 한두 번쯤은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절실하지 못했거나 띄엄띄엄 집중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과도하고 무모하게 절실했거나. 그리고 때로는 실패가 더 큰 성공으로 이끌기도 한 것을 보면 실패는 또한 성공이기도 한 것을.


현대 자본주의는 아무 탈 없이 작동하고 점점 더 많은 소비를 원하며, 기호가 규격화되어 쉽게 예측하고 조종할 수 있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 [사랑의 기술], 에리히프롬 -

내가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를 보면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듯.


230205
며칠 간의 정적 속에 내 귀를 담갔다가 꺼내어 다시 음악을 들려주니 다시금 깨어나는 영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나의 사랑하는 영감이여, 나는 그대의 바다 위를 떠다니며, 온갖 상상과 소망에 대한 열정을 불러본다. 내 어찌 그대 없이 살 수 있을까. 신의 섭리와 속세의 경계에 걸친 그 영감으로 가는 길에는,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 나를 북돋우는 속삭임이 자욱하고, 평생 그 그늘에서 안식과 고뇌를 반복해 온 나는 이제 마지막 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230203

심장과 머리는 우리 감성의 양극점이다. 서로가 다른 한쪽 없이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이성이 도달하지 않는 자리에 필요한 것이 감성이다. 어리석은 자의 불행은 재산, 관직, 신분을 관리하고 사람들과 교제할 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을 보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


한 앳된 소녀 - 아닐 수도 있다. 최근 들어 모든 사람들이 다 나이보다 어리거나 젊어 보인다.-에게서, 아주 아주, 정말 오래전에 알았던? 함께 놀았던? 소꿉놀이에서 내 아내였던, 그 아이의 것과 비슷한 향기가 났다. 이내 어떤 남자의 진한 향기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귀를 꽉 틀어막으니, 세상 소음은 잦아들고 비로소 내 숨소리가 들린다.


230202
어떤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지하철 문가에 안쪽을 보고 서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몸을 이리저리 꼬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후, 몸 비틀어데기를 멈추더니 이내 구두를 벗었다 신었다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양쪽 발을 번갈아 가며 벗어서는 반대편 발등 위에 대고 발바닥을 문지르는 게 아닌가. 뭐 하는 짓이지? 생전 처음 보는 꼬락서니였다. 파리증후군 -원래의 파리신드롬이 아닌- 인가? 무좀 때문에 고통받는 가련한 인간인가.


230201

시간의 추이와 그 여행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날아오르는 음표들에 관한 사랑스럽고도 영리한 작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지하철 의자가 너무 뜨거워서 땀을 주르륵 흘려야 했다. 이 정도까지나......엉땀!


하루에도 수 차례를 이리저리 치이며 다녀야 하고, 온갖 소음의 물결 속에서 헤엄쳐 다녀야 하는 이 메트로폴리탄 왕국은, 편리한지는 몰라도 편안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 왕국의 백성들은 빠르고 값싼 편안함과 질 나쁜 편리를 포용한다.


230131
Slip of the tongue! 입뿐만 아니라 글에도 적용되는 것이 신기하다.


속마음을 여과 없이 말하는 것이 마치 영업비밀을 털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을 위한 배려인가.


Noise cancellation을 뚫고 침입하는 안내방송, 음악, 기계음들. 정말 대단하다.


소음의 질이나 양에 있어서 으뜸은, 내가 타 본 노선 중 단연 신분당선이다.


통신 상품 하나 해지하는데, 통화 대기하느라 30분이 훌쩍 넘어가는데, 이것 저것 요구하는 상담 컨설턴트에게 짜증 섞인 말투가 막 시작 되자마자, 수화기 너머 음성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내 내 마음을 추스르는데, 왜 서글픈지. 짜증 낼 뻔해서 미안해요.


230130
07:47 드디어 하늘이, 강이, 다리가 그리고 도로와 차가 보인다. 이 지겹도록 빽빽하고 쉼이 없지만, 편리한 도시와 완전히 결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잠시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강 건너 지하 세계로 들어서자 불끈 솟는 결별의 의지를 느꼈다.


한국인의 정을 맛보기 위해서는 많은 아량과 인내가 필요한 시대다.


주린배를 달래는 귀갓길. 불 밝은 편의점들을 보면 어릴 적 동경해 마지않던 구멍가게가 떠오른다.


230127
귀에 꽂혀 떠나지 않는 이 쨍쨍 거림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시간을 세는 초침의 날카로운 움직임 같고 또 뾰족한 한겨울 바람이 투명한 공기의 벽을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다만, 아주 드문 경우지만
어느 사랑하는 이의 손길이 우리의 손에 놓일 때,
무한한 시간이 광채를 띠고 몰려와
녹초가 되어
우리의 눈이 상대 눈의 말을 읽어낼 수 있을 때,
세상사에 귀 막은 우리 귀에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애무하듯 울려올 때,
그때에는 우리 가슴속 어디에선가 빗장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오랫동안 잊었던 감정의 맥박이 다시 뛰게 된다.
-[파묻힌 생명], 매슈 아널드-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무엇이든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만큼 애를 먹이고 나서야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이 있다면 기뻐해야 해.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므로.


230126
규칙을 따르고,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면 듣지 않아도 될 잔소리와 경고가 너무 많다.


점잖고 예의 바르게 그리고 존중하여 대하면, 자신이 다루기 쉬운 사람으로 여기는 '그래도 본심은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따끔하게 경고를 날리면 그제서야 움찔한다. 늘 어정쩡하게 선하거나 불량스러운 사람들이 더 문제다. 친해지고 나면 흔히 양아치들이나 가질만한 결점들이 보인다.


육중한 몸에 두꺼운 외투까지 껴입고 지하철 자리에 앉는 사람들을 보면 왜 그리도 답답해 보이는지. 몸뚱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외투는 벗을 수도 있는데, 굳이 옆사람들까지 쪼임의 늪으로 끌고 가야 하나.


230125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거센 바람이 몸부림치는 출근길. 사람들이 모두 넋 나간 표정들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3일만 때우면 또 주말이 오잖는가. 주말을 쉴 수 있는 이들은 그래도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서서 걷는 것, 말하고 읽는 것을 배우지만 사랑은 배울 필요가 없다. 사랑은 생명처럼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있다. 그래서 사랑은 현존하는 우리의 가장 심오한 바탕이라고들 말한다.
우주의 천체들이 서로를 끌어당기고 서로에게 끌리며, 영원한 중력의 법칙에 따라 결합하는 것처럼, 타고난 영혼들 역시 서로에게 끌리고 서로를 끌어당기며 영원한 사랑의 법칙에 따라 결합하고 있다.
태양 빛이 없으면 한 송이 꽃도 피지 못하듯, 사랑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가 없다.
-[독일인의 사랑],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신의 섭리와 우주의 원리를, 인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입하여 해석하는 방식이 나랑 똑 닮았음에 깜짝 놀란다.


230124
일상에서 벗어나거나, 너무 바쁘거나 때로 시간이 남거나, 한 두 개의 굵은 가지 같은 상념에 사로 잡혀 있거나, 안일함이 땅거미처럼 스르르 내 마음을 뒤덮거나, 음악이나 글에 눈과 귀를 저당 잡혀 있거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거나......
단상도 숨을 죽인 채, 생각의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 섰다.


230121
한국살이, 새로운-아니 이것은 사실 잊어버렸거나 마모되었던- 경험이, 그리고 추억이 하나둘씩 되살아 나고 있다. 기억나지 않는 삶의 영역까지 확장하면, 나는 기억 되살리기의 연속선상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며, 욕망이 아닌, 새로운 소망들을 가슴속에 곱게 품으며 꿈을 꾼다.


어머니의 애청 프로그램을 함께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앳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줄줄이 나와, 나이 든 성인의 감성으로 트로트를 불러대는 것이 아닌가. 그 음성과 기교는 실로 놀라웠다.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가사들이 설익은 몸에서 내뿜어지는 모습이 다소 기괴해 보였다. 그 기괴함은, 지극히 상업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열정이, 음악이라는 아름다움을 대신하는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230118
생각이 너무도 많은데 정리가 되질 않는다. 딱 하나의 단어에 얽매여 있다. 그 생각을 애써 몰아 책 속으로 쓸어 담는다. 그 속에서 매몰되어버리기를. 잠시만이라도.


오랜 들썩임 끝에 맞이한 이 자의적 절제조차 결국은 나 혼자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의미 있는 사색은 정말 고독과 고통에서만 필 수 있는 것이냐.


종점에서 시작하여 종점으로 돌아오는 하루의 꿈. 그 꿈은 종점에서 시작해서 차곡차곡 쌓였다가, 모든 실상을 목도하는 동안 쓰이고, 그 종점으로 돌아오면 남은 꿈들은 거두어진다. 왜 그 종점에서 출발했는지, 왜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는지 묻는 사람은 있어도 아는 사람은 없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아주 오래전, 역에 닿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역사를 나서기 위해 지하철 칸을 세로 지르던 내 모습이. 이상하게도 반가웠다.


2023년의 나는 여전히 2008년 6월에 머물러 있다. 변한 것은 우리가 쫓는 시간뿐.


230117

이 쓰러지지 않는 인간 도미노의 맨 끝에 앉아, 숨도 못 쉬고 있다가 탈출했다. 밤에 잠 않자고들 뭐 했니?


떠나질 않는다. 기쁨과 행복과 영감이 가득한 그 길. 가본 적 없는 길. 다소곳하고 우아한 길. 온갖 여름의 꽃들과 겨울의 눈꽃이 만발한 길. 두 갈래인 듯 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운 길. 끝이 보이지 않는 길.


100일이 지났어도 지워지지 않았던 기억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지금에 와서는 그 기억들이 궁금하기만 하다. 그리로 다시 돌아가면 지워졌던 일들이 되살아날까.


죽음의 계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학살이 자행된 곳 중 하나인 마우타우젠 강제수용소의 '죽음의 계단'이다. '노동에 의한 몰살'이라는 원칙 아래 운영된 이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50킬로그램의 돌을 메고 이 계단을 올라야 했다. 돌을 이기지 못해 누군가가 굴러 떨어지면 수십 명이 함께 깔려 죽었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이러한 대량 학살을 일으킨 근저에 있는 근대적 이념의 허구성을 폭로했다.
-[카뮈], 최수철-


전범들을, 진정한 뉘우침이 없는 범죄자들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피해자의 인권은 평생 회복할 수 없도록 유린되었고, 주위 사람들의 영혼까지도 파괴되었는데 용서만 하면, 화합과 안정으로 다 함께 손잡고 가면 끝인가.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프랑스공화국은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

관용이 필요한 사람들은 저 늘어만 가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베르 카뮈-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그대는 마침내 샘솟는 겨울이 숨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나요.


23ㅓ0116
그는 신께 간절히 빌었다. 다시는 그 어떤 악기라 할지라도, 알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해달라고. 다시 태어난 그는 애기였음에도, 이유도 모른 채 벽에 머리를 찧으며 떠오르는 알 수 없는 괴로운 기억들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이면, 그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니체-

미 Mi에게 내가 반쯤은 웃음며 반쯤은 진지하게, 아주 늙어지면 만사에 대한 고양된 마음이나 감각의 흥취 등등이 끝나버릴 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흐느껴 울면서 말한다. "내가 사랑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작가수첩 3], 카뮈-

카뮈의 마지막 사랑 메트 이베르 Mette Ivers여! 사랑에는 고양된 마음과 감각의 흥취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신비로운 것들이 있다오. 그대는 지금도 그런 사랑을 품을 수 있나요. 아니면 카뮈의 말대로 되었나요.


노약자석에 앉는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럴 만큼 노약해 보이지 않는 것이, 나의 나이와 연관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향 때문일까.


당신의 나이와 배경을 알기 전까지, 우리의 대화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하지만 당신을 더 많이 알게 되면서부터 근거 없는 추측과 편견이, 당신을 옳바로 보고 본질을 직시하는데 대한 집요한 방해를 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의 도움이 없어도, 아니 오직 한 분의 도우심만 있으면 그 어떤 일도 헤쳐나갈 수 있어 보이는 사람아. 그대를 불러본다.


요컨대 인간은 매 순간 죽음에 면역되지 않고 죽음의 실상을 의식하며 깨어있어야만 죽음 (타나토스)에 대비되는 삶 (에로스)을 가장 열렬하고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죽음에 면역되면 삶의 매 순간에도 또한 무감각하게 될 터다. 죽음과 고통의 타나토스, 행복과 희망의 에로스, 중요한 것은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타나토스와 에로스의 결혼이라고 부를 수 있다.
-[카뮈], 최수철-

230114
또 하나의 잊지 못할 날이, 내 형이상학의 달력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더했다. 형식은 형이하학이었지만 내용은 형이상학적 사건이었다.


230112
때로 신께서 나를 데려다 놓는 곳이 있음을 깨닫는다. 운명 보다 더 체계적이고, 우연 보다 더 구체적이며, 필연 보다 더 강하다. 이것은 예정된 약속. 기억에는 없지만, 오래전 맺어진 간절한 약속이었음을.


인간을 격하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는 것이 곧 인간의 위대함이다.
-[작가수첩 1], 카뮈-

내가 자신의 허영에 양보할 때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생각하고 살게 될 때마다, 그것은 배반이 된다. 그때마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행동하는 것은 엄청난 불행이며 그로 인하여 나의 존재는 진실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것이다. 남들에게 자신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자신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뭔가 주기 위하여 그런 것이니까. 인간에게는 훨씬 더 큰 힘이 내재해 있다. 그 힘은 꼭 필요할 때만 나타난다. 궁극에까지 간다는 것은 자신의 비밀을 간직할 줄 안다는 것이다. 나는 고독함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비밀을 간직했기 때문에 고독함의 괴로움을 극복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알지 못한다.
-[작가수첩1], 카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여러 가지를 알고, 또한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소비한다. 그리고 결핍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다.


지하철에서, 한 아리따운 젊은 부인이-결혼 반지라고 여기며-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누군가를 죽이는 괴물은 아닌데......


같은 몸에서 나오지만, 입김과 방귀는 다르게 취급받듯,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멀어지게 한다.


워크샵 4시간. 끝나니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


데이터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아니, 그 자의 연인이 지배한다.


230111
버스가 도망쳤다. 시간을 안 지키고. 뜻밖의 멀뚱한 시간 12분.


여행한다는 것은 즐거운 것도 쉬운 것도 아니다. 가난하고 돈 없는 처지일 때 여행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에 대한 취미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다.
-[작가수첩 1], 카뮈-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어울린 이 글이 나의 눈물을 자아냈다. 긴 여행을 하고 있는데 더 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


매력적으로 아늑하고 차분하게 부산한 까페이거나, 고요하기 짝이 없는 내 방이 아닌, 이 산만한 지하철 안에서도, 때로는 선 채로도 뭔가 써낼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해. 시간이 너무 길어.


약속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켜야 마땅하겠지만, 그 경중을 따지기도 어렵겠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 그 자리에서 더 크다고 여긴 그것을 위해 다른 것들을 외면한 기억들이 허다하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선험적인 외침에 이끌려 덜컥 약속을 했고, 그것은 이제껏 알지도, 이후로도 가늠하기 어려울 거대한 약속이 되다.


배려/양보와 이기심의 경계. 적정량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커지는 배려에 나는 희미해지고, 짙게 드리운 이기심의 그늘, 그 아래 조용한 겨울 호수는 맑은 하늘을 담지 못한다.


때로는 너무도 풋풋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진지하고, 또 무모하게 고집을 부리고, 지나치게 경험에 의존한 탓에 일관되고 통합된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카뮈], 최수철-

카뮈가 젊은 시절에 집필했던 [행복한 죽음]에 드러난 그의 성향에 대한, 최작가의 묘사. 소설을 포함한 모든 예술작품은 작가의 모든 것이 육화 된 인간과 흡사하다.


230110
매일 4시간 가까운 시간을 지하에 갇히다 보니, 가뜩이나 멀었던 자연과의 서먹함은 더욱 깊어지고. 이 투박하지만 선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나는 끊임없이 사랑하자는 다짐을 한다.


지하철 안에서 천천히 걸으며 천국과 지옥에 대해 떠드는 사람이 있다. 비니를 쓰고 얇은 자켓에 묽은 청바지 그리고 엄마들이 들고 다닐 법한 넓고 얇은 백. 인상적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선량한 이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이들이 이리도 많은데, 정작 자신들이 무슨 죄를 저지르는지도 모르는데, 마치 대항해 시대에 한 손엔 성경책을 다른 손에는 총칼을 든 제국주의 집단들 같은데,
고작 지하철 안에 갇혀 있는 이들의 잡념과 쪽잠을 방해하는 저 사람은 그들에 비하면 천사다. 인상적이다.


축 JS's 결혼! 모든 준비가 잘되고 수월하기를 빌어요.


지하철 플랫폼에서 환승하러 가는 길에 이리저리 부딪히는 맹인. 혹시나 해서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잡아주려니 내 손을 휙 뿌리친다.
명칭을 달리 부르면 지위와 대접이 달라지나. 장애우라고 하면 뭐가 바뀌나. 실속 없는 보여주기들.


자신 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지거리하는 어른이들과, 갈길이 구만리 같은데 오늘내일하는 사람 같이 기운 없어 보이는 젊노인들.
이곳에는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근데 남 탓 말자.


함박눈 처럼 내린다. 겨울이 한창인 그곳에는, 풍성한 송이들이 축복의 바람을 타고, 하지만 조금도 비껴내림 없이, 춥지도 외롭지도 않은 겨울이 그곳을 온통 뒤덮고 있다. 무엇일까. 처음으로 만져보는 그것들은 부드럽고 신비하기만해. 나는 이제 갓 삶속에 던져진 아기였다가도, 당장 들판으로 내달리다 날개짓 몇 번으로 투명한 겨울 하늘을 가로지르는 청년이 된다. 그저 이대로 이대로만 머물 수 있기를.


230109
매일 새벽 정거장에서 만나는 세 사람. 하얀 롱패딩에 파마머리 남자. 그리고 늘 같은 검정색 외투의 중년 남자. 그리고 그곳에는 없는 한 사람. 한결같은 눈빛과 한결같을 표정.
그리고 한결같은 우리의 일상. 하지만 내 마음에는 새로운 소망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새로운 일상이 수놓아지고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은 힘들다. 당부드린다는, 해주기 바란다는 등등. 너무 많은 경고음들, 안내 방송과 CM송들 버겁다.


다른 음악들을 듣다가도 다시 돌아가는 The Six Partitas. 인생 목표가 하나 생겼다. 쳐보고 싶다. 죽기 전에.


민원 조치 관계로 지하철이 멈춤. 얼마나 지체되었을까. 그 여파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나비효과와 파급효과의 차이가 뭐지?


그대는 나의 '세계 앞의 집'. 재미있게 노는 집이 아니라, 그 안에 있으면 행복한 집이다. 작은 방이 이제는 큰 집이 되었다.
카뮈를 떠올리며......
그는 그 집에서 세 명의 여성들과 살았다고 한......다.


내가 후한 점수를 주며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느끼게 하고 떠올려 주는 책들을 사랑한다.


나는 나 자신의 그 어느 부분도 버리지 않는다. 나는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는다. 저들의 처세술 따위는 따라오지도 못할 저 어려운 삶의 지혜를 참을성 있게 깨우쳐가면 되는 것이다.
-[결혼•여름], 카뮈-

230107
젊은 날들은 그저 암울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랬기에 우정과 동지애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겠지. 가장 정의롭고 가장 자유롭고 또한 가장 무모했던 어른의 시간을 함께 했던 이들을 다시 보니 어찌 그리 그대로인지. 우리는 서로의 가장 아름답고 푸른 시절의 모습들을 각인했고,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모습들만 보인다.


230106
고루하고 지루한 시간들은, 별안간 튀어 올라, 저 높은 곳에서, 세상과 모든 이들을 내려다보는 환희를 만끽하는 시간을 위한 도구들이다.


잔뜩 멋을 부리고 노오랗고 커다랗고, 낮은 곳에 선 달을 보라. 고개 숙인 채 빠른 걸음에 몸을 실은 이들이 물결처럼 흐르는 빌딩 사이에서 나를 본다. 그대는 아르테미스인가.


하얗고 미세한 먼지들이 투명한 핸드폰 케이스 안쪽으로 어떻게 들어갔을까. 꽉 물리듯 틈 없이 담겼을 텐데. 원자의 99% 이상의 공간이 비어 있어서 그저 통과했을 뿐일까.


오래전, 인정을 나눈 -베풀었다는 동사는 인정이라는 명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덕분에, 많은 위기를 따돌릴 수 있었던 기억이 스며 나왔다.


230105
언젠가부터 늦잠을 잘 수 없는 이가 되었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기쁘고 참신한 것이면서도 또한 아슬아슬한 것. 본질을 고수하기 위한 무의식의 수고가 나의 눈을 가볍게 한다. 패러다임의 변화일까 아니면 '과두제의 철칙'으로 귀결되는 과정의 시작일까.


노새는 매번 집을 나서며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듯한 흥분에 젖는다.

오늘은 또 어떤 흥미롭고 재미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에야 여물을 되새기며 관조하는 노새는, 험한 산길들을 누비는 동안 수 차례 죽음을 맞이할 뻔했었다.
어느 날 깊은 산속 연못에 닿아, 물 한 모금 마시려 내려다본 물 위에 비친 모습은 노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모든 일의 성공의 열쇠일지도 모른다. 아는 것의 정확함과, 행하는 것의 바름은 또 별개의 것. No pain no gain.


6개의 소변기 중 5개가 비어있는데 굳이 내 옆에 와서 볼일 보는 사람의 심리는 뭐지?


내가 당신을 지금 그대로 대한다면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머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의 가능성을 보고 그에 따라 대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 -괴테-

내가 보는 당신의 가능성대로 될 것이오.


여늬 겨울밤, 속삭이듯 들려오는 겨울의 웃음소리. 나지막한데 내 맘 속에서는 커다란 울림이 되어 심장을 두드리다 목덜미를 타고 정수리로 솟구친다. 아 이런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가슴 가득한 벅참. 소리라도 질러 내뱉고 싶지만 나의 입은 미소를 그리며 닫혀 있을 뿐.
이 겨울은 나의 모든 것이 되어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나를 이끈다.


늠름한 개 두 마리. 주인이 불러도 모른 체. 손에 맛난 간식을 잔뜩 쥐고 담을 넘은 도둑을 보고선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230104

https://en.m.wikipedia.org/wiki/File:Domenico_ghirlandaio,_visitazione,_1491,_da_cappella_di_lorenzo_tornabuoni_in_s.m._maddalena_de%27_pazzi_a_fi,_02.JPG


Et exultávit spíritus meus: in Deo salutári meo.
(And my spirit hath rejoiced in God my Savior.)
Quia respéxit humilitátem ancíllae suae:
(Because He hath regarded the humility of His slave:)
Ecce enim ex hoc beátam me dicent omnes generatiónes.
(For behold from henceforth all generations shall call me blessed.)


아무리 애를 써도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 존재'를 발견했다. 일생 처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알고 있는, '관계'를 규정하는 여러 개념 간의 자유로운 전환이 가능하다. 규명해보려 애쓰는 나는 다른 우주에 있고, 입에서는 허다한 단어들이 맴돌다 쏟아진다. 의미들 간의 조밀함에도 불구하고 끝내 만족할 수 없다.


지하철. 핸폰을 안 보고 있는 유일한 사람을 발견했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핸폰을 꺼낸다.


사람의 지적능력에는 IQ나 EQ만 있는 게 아니다. 직관력과 통찰력도 있다. 머리를 써야 하거나 영리하지 않아도 된다. 경험까지 가미되면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남들과 더불어 살며, 가진 것을 나누고, 조금 손해 보더라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흔하진 않지만 눈에 띈다. 이런 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족들을 위한 어머니의 마음처럼, 수고의 손길과 배려는, 냉혹함과 이기심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의 시간과 회심의 기회를 선사해 준다.


230103
정말 오랜만에 꿈속에서 회사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물결치는 까만 머리카락 속에서, 들킬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숨은 새치 몇 가닥. 그녀도 이랬다.
고운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세월의 시름이 깊게 패여도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사람.


생각이 몸을 지배하고, 그 몸은 습관에 젖고, 습관은 나의 외형을 갖추게 한다. 늘 그래왔듯 할 수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 왜 꿈에 회사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왔는지 이해가 된다.


속상해. 무조건 편안해야 한다.


230102
줄줄이 인상되는 물가들, 감원소식들이 다시 돌아온 강추위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속에 찬바람을 불어넣는다.


이해하고, 품어주고, 덮어주며, 용서하며 끊임없이 사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숙을 위해서는 대가가 따른다. 그 시간이 짧기만을 바랄 뿐. 우리는 얼마나 긴 시간을, 갈망하는 것들을 가슴에 품고 견뎌냈던가. 몸이 심연으로 가라앉는 느낌. 처음 가는 길은 낯설고 길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음악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며 위로한다.
그늘진 담벼락 밑에 한 어린 소년이 앉아 담너머 집에서 넘어오는 피아노 소리를 주워 담고 있다.
'소녀의 기도'.
배고픔도 잊어버리고, 투명한 영혼의 유리병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울림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겨울 속에서 여름을 느낀다는 것은 쉽지 않아. 여름 속에서 더디 가는 좁은 나이테를 찾기는 어려워. 나는 수 백번을 찾아도 늘 또 만나고 싶은 음악들 같은 사람은 아냐. 그런데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사람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날씨에 지하철 안의 선풍기를 돌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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