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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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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석

(0004)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분이다. 이 분은 특히 부조리라는 개념에 특화된 사람이다. 우리가 삶 속에서 흔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느끼고 고통받는 그런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손가락질을 난사한 분이다.

부조리가 무엇인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이 없어도, 아무 생각없이 사는 이들도 느낄만한 뭔가 말이 안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들을 말한다. 흔히들 뭔가 관료나 정치가 또는 기업인들의 고질적인 부정이나 부패를 일컫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것들은 부조리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조리는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친숙하고 자주 발생한다. 그러한 부조리한 상황들을 때로는 운명이라느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느니 하면서 그 상황에 빠진 자신의 처지와 부조리한 사회를 합리화 한다.

비록 그 자신이 평소 가장 부조리한 것이라고 말했던 상황으로 사망했다. 아이러니 하다.
”어린 아이의 죽음보다 더 분노할 만한 일은 없고,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것은 없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결국 그는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44세였던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47세가 채 되기도 전이었던 1960년 1월에 사망했다.

그의 사상은 ‘부조리’와 ‘반항’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대변 (똥이 아님. 똥에 대해서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또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대장정’편 말미에 보면 매우 철학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려면 하고 싫으면 관두면 됨.)된다.

’이방인’에서는, 군중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인간들은 집행 날짜를 모르는 사형수들일뿐인데,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에 선 주인공 뫼르소를 야유한다. 성직자, 검사, 판사, 변호사, 엄마가 생전에 몸담았던 요양원의 관리인 그리고 뫼르소 주변 인물들의 모습들을 통해 그들의 부조리한 행태 가운데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되어버린 뫼르소의 모습을 조명했다.

카뮈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은 당대 최고 지성 중 한 명이었지만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당시 유럽의 사상적 주류를 이루었던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었으나 결국은 모두 거부하고 이방인으로 살았다.

카뮈는 프랑스 본토가 아닌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이자 파리의 유명 대학 출신도 아니었다. 때문에 식민지 전 세계 모든 군소 민족들의 해방과 자립을 지지했던 주류 지성인들과는 달리, 알제리에서 기반을 잡고 사는 수 많은 프랑스인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행보로 또 비난을 받았다.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권력 독점욕의 작태를 목도했고, 그리고 실제로 공산당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공산주의의 허구와 실상에 대한 비판으로 또 비난을 받아야 했다. ‘권력’과 ‘권위’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조리를 거부하고 이에 대해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진정한 아니키스트였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성인이 생명 처럼 지켜야할 덕목이라고 봤다. 이 얼마나 진실되고 아름다운 지성인의 표상이 될만한 자세인가. 무슨 주의나 사상 그리고 종교는 늘상 자신들의 주장이 인간을 구원하고 그들을 해방시킨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종내에는 인간을 위한다며 또 다른 인간들을 배척하고 탄압하고 또 증오하며 죽이기까지 한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내부 결속을 도모할 수 있고 그리고 그로인한 권력의 유지와 독점을 통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되는 부조리들을 카뮈는 냉철하게 간파했고 당대의 사조가 열광해 마지않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의 탈을 쓴 전체주의를 조소하며 비웃었다.
그의 이런 부조리에 대한 반항은 실로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그의 통찰력은 시대를 넘어 귀감이 되고 본 받아야 할 표상이다.

’꽁바 (Combat)’라는 선전지를 통해 독일 파시즘에 대한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 가담했다. 전 생애에 걸쳐 모든 현상과 문제에 대해 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피력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실된 지성인은 설령 핍박을 받거나 죽음의 위협에 놓인다 할지라도 자신의 의견을 감추거나 왜곡해서는 안된다. 독일인이면서도 독일의 파시즘과 이에 적극 동조하던 독일인 전체를 야유한 헤르만 헤세도 조국으로부터 끝끝내 환영받지 못했다.

카뮈의 산문은 너무나도 감각적이며 원숙하고 수려하다. 내가 읽었던 ‘결혼.여름’이라는 산문 속에 보석 처럼 박혀 있는 그 소름 돋는 문장들은 나로 하여금 몇 번이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내 일생 처음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해서 원서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스승이자 평생의 정신적 동지였던 장 그르니에의 ‘카뮈를 추억하며’에 묘사된 그의 일거수 일투족 그리고 그 속에 세세하게 담긴 카뮈의 정신적, 육체적 행적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꼭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불러 일으켰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나는 그를 그리워 하며, 재회를 (아니 횟수에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만날 수 있기를) 바랄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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