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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7)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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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석

(0007)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왜 말을 껴안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지 나는 전적으로 동감이 되는데, 사람들은 그가 드디어 미쳤다고 했다. 사실 그 이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사망하기는 했다. 이 글 맨 아래 [토리노의 말]에 대한 정동섭 교수의 "시네마 크리티크"를 참조하라.

 

Nietzsche 총 9글자로 된 독일어 단어가 한국어 두 자로 발음이 가능하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뭔 조화여. 잘못하면 ‘니에츠셰’ 식으로 잘난 체 하며 읽을 만한 단어가 아닌가.

18세기 초에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헤집어 놓은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은 너무나 어려웠다. 다만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는 것 하나만 기억하고 있다. 즉, 인식의 주체가 가지는 인식에 따라 실존하는 대상물 (사물, 존재 등)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우주 조차도 인식하는 주체의 생각에 따라 다른 우주들이 될 수도 있다는……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되는 매우 난해한 철학적 관점이다.
3대 이성 비판을 읽고 이해하려 했다간 크게 다친다. 몸도, 마음도, 정신머리와 버르장머리마저도. 그래서 시도는 해봤던 것 같은 기억이 있기는 한데, 내가 뭐 철학으로 밥먹고 살 것도 아니고 굳이 그런 어려운 책으로 스스로를 고문할 필요까지는 없어서 읽지는 않았다.

한편 니체도 난해한 단어와 표현으로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주장한답시고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그래도 칸트 흉님 보다는 쬐금 더 이해하기가 나았다.
그 당시 만연하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결정론, 운명론을 거부하고, 살아 있는, 그래서 하늘로부터 정해진 것 없이 자신이 개척하는 만큼의 삶을 살게 된다는 “생 철학”을 주장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실존주의적 시각이다.

그 유명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인간적인 것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 정도는 들어봤고 읽어볼만 하다. 여기서 ‘읽어볼만 하다.”

우리 인생에는 마침표가 없이 끊임없는 되돌이표가 있어서 영원히 나 자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고 또 돌아오고 돌아온다는 영원회귀론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들 수만 있다면 다음 생에서의 나는 이번 생의 나보다 훨씬 발전된 나로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관심을 확 끌었다. 불교의 윤회와는 다른 개념이다.
니체에게 있어서 고난과 시련은 보다 나은 나로 성장하게 하는 거름일뿐이다. 위버멘쉬 Übermensch (본 뜻은 넘어서는 자) 즉 초인이 되기 위해 고난과 역경도 어쩌지 못하는 매일 매일 노력하고 발전하는 인간! 멋지지 않은가.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9062 

 

[정동섭의 시네마 크리티크] <토리노의 말(馬)> ― 니체와 세상에 바치는 묵시록 - 르몽드디플로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영화감독이 된 철학자 20세기 후반 문화·지성계의 정점에 존재했던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이 매년 한 번씩 벨라 타르(Béla Tarr: 1955~ )의 (1994)를 감상하겠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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