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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인공지능 세상에서는 차별이 없을까?

by Condemiang 2025.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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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형 사이보그를 묘사한 디지털 아트워크로, 피부 아래로 기계 부품이 드러나 있다. 몸통에는 시계와 기어 구조가 보이며, 오른팔은 완전히 기계로 되어 있다. 배경은 기계적 또는 사원 구조처럼 보이는 복잡하고 초현실적인 무늬로 구성되어 있어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강조한다.

 

눈에 띄는 첨단 기술들

조지 플로이드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다. 그런데 문득 가까운 미래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세상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서늘한 두려움이 스쳐 갔다.

정상적인 뇌를 장착한 모든 인류의 지적 능력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초인공지능이 나타나는 시점을 “기술적 특이점 (Technological Singularity)”이라고 한다. 대략 2040년쯤일 거라고 짐짓 전문적으로 고심한 척 넘겨 집고 있다. 스티븐 호킹, 닉 보스트롬, 일론 머스크와 빌 게이츠 (2015년에는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설레발치더니 2019년부터는 양날의 검이라며 투자하겠다는 등 긍정적인 면을 더 언급하고 있음. 왜 이럴까?) 등이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 적극적으로 경고를 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 자동차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뉴럴링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컴퓨터의 데이터를 뇌에 업로드하고, 사람의 생각을 컴퓨터로 다운로드하는 양방향 데이터 통신의 구현이 목표다. 현재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뉴럴링크로 보면 그 어떤 공부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데이터든 머리에 다운받으면 끝이다.

우주여행 및 운송 사업인 스페이스 엑스 프로젝트도 하고 있다. 깊은 땅속에 진공 튜브를 파이프처럼 설치하고, 이 속에서 운송수단이 되는 캡슐을 시속 1,30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 (대략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분이면 도착)로 운행하는 하이퍼루프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 사람 참 여러 가지 한다. 인간이 아닌 것 같다. 혹시 인공지능이 아닐까.

나중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초인공지능이 구축한 일단의 시스템 집단과 뉴럴링크로 무장된 인간들 사이의 전쟁이 일어날까? 터미네이터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진짜로.

차별과 갈등을 치유하는 인간들의 방법

인종차별은 어느 한 인종만의 문제는 아니다. 차별을 받는 대상이, 차별을 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때로 차별의 주체로 알려진 사람들이 역차별의 희생양이라고 호소하기도 한다. 인종차별 외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차별이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가정, 학교, 회사, 종교 단체, 국가 등 어디 한군데 차별이 없는 곳이 없다. 둘째라서, 여자라서, 공부를 못해서, 키가 작아서, 체중이 무거워서, 외모가 번듯하지 못해서, 돈이 없어서, 외국인 노동자라서 겪은 크고 작은 차별들. 차별이라고 생각해 보지도 못한 생활 속의 친근한 차별들도 숱하다. 차별하면서 그것을 구별 또는 변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두 이해와 배려의 부족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몇몇 사람에게서 받은 인상으로 그들이 속한 국가나 종교 또는 문화 전체를 판단하는 경우도 그렇다. 제한적 경험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일반화의 오류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적인 오류는 또한 인간적인 배려와 공감으로 극복될 수 있는 문제에 불과하다.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사악한 모습들은 또 헌신적이고, 지혜로우며 희생과 사랑이 넘치는 위대함으로 치유된다.

 

 

차별이, 대립과 갈등이 더 쉽게 치유되는 세상이 올까?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능력과 효율성은, 곧 사회 전반에서 활용될 것이다. 거대한 빅데이터를 통해 성장해 온 인공지능의 빈틈 없는 통제 아래에서, 오류 수정과 갈등 해소의 과정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빅데이터에는 사랑, 정의, 공정, 평화, 화합, 풍요와 같은 긍정적인 개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증오, 불의, 전쟁, 대립, 빈곤과 같은 부정적인 개념도 가득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공지능 “할 HAL”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서운 일들이 발생한다. 이 영화가 1968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거품 물고 쓰러질만한데, 그때 이미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협을 연출했다는 것도 정말 놀랍다. 이 사람도 (그리고 각본 작업에 함께 참여한 아서 클라크 작가도) 인간이 아닌 듯하다.

아이언맨에 나오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와 같이 긍정적인 측면의 기능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완전하지 못한 인류가 완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 불완전한 시스템이 상상할 수 없이 강력하면서, 오류 수정의 길이 차단되어 있다면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줄 것이다. 인간들끼리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미래에는 차별이, 대립과 갈등이 더 쉽게 치유되는 세상이 올까?

 

2020년 6월 26일


영어 버전: https://condepark.blogspot.com/2020/06/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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